[2017] 의료 지식의 사회적 구성과 건강행동: 유방암 논문 초록과 환자 포럼 게시글의 토픽 모델링을 중심으로
2017년 08월 29일 12시 44분
본 연구는 의료 지식이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과정과 건강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려는 시도이다. 의료 지식이 중요한 까닭은 그것이 사람들이 주목하는 대상과 그것에 대한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개인들 사이의 연결망과 상호작용하는 중요한 구조적 변수이기 때문이다. 본 연구는 지식을 고려함으로써 기존 연구가 건강 행동을 설명할 때 사용했던 개인 수준의 변수와 개인 간 수준의 변수들의 한계점을 보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본 연구는 유방암 의료 지식을 주요 대상으로 삼고, 그것의 형성과 영향을 분석한다. 여러 질병 중 유방암을 선택한 까닭은, 유방암에서 의료 지식이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양상과 그것이 지니는 광범위한 영향을 관찰하기 용이하기 때문이다. 세 가지 요소가 여기에 기여하고 있다. 1) 우선 암 의료 지식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높다. 2) 유방암은 그 중에서도 발생률이 가장 높으며 국가적/사회적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3) 유방암의 유병 기간이 긴 편이라 의료 지식의 영향이 장기적이고 광범위하다. 유방암 의료 지식을 탐구하기 위해, 1975년부터 2016년까지 제출된 유방암 논문 초록 48448건과 community.breastcancer.org라는 유명한 유방암 온라인 환자 포럼의 게시글 약 14만 건과 부속 정보를 자료로 삼았다. 유방암 의료 지식은 다양한 수준에서 형성되고 작동하는데, 공식적 의료 지식의 경우 연구 논문을 통해 접근하였고, 비공식적 의료 지식은 온라인 환자 포럼을 통해 접근하였다. 이들을 분석하기 위해 토픽 모델링을 중심으로 단어 네트워크 분석과 라소 회귀 분석을 활용하였다. 토픽 모델링은 문서 안에 존재하는 복수의 토픽을 추정하여 문서 집합 이면에 잠재하는 지식의 구성을 측정하는데 용이한 방법인데,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에 단어 네트워크와 라소 회귀분석을 통해 토픽 모델링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려 시도하였다. 분석 결과 밝혀낸 점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의료 지식은 일정 부분 사회적으로 구성된다. 질환, 즉 환자의 주관적 경험 만이 아니라, 질병, 즉 신체의 생물학적 변화에 대한 논의 역시 그러하다. 본 연구는 논문의 펀드 출처가 논문의 핵심 대상과 그것을 다루는 방식이 설정되는데 미치는 영향을 분석함으로써, 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탐구의 초점과 단위가 달라지는 현상을 확인하였다. 유방암 논문이 정부 펀드를 받았을 경우, 해당 논문은 유방암 환자보다 다른 단위에 더 관심을 가진다. 유방암 세포나 유전자 등 아예 미세한 대상에 주목하거나(본 연구는 이를 ‘분자적 대상’이라고 지칭하였다), 인종이나 특정 지역의 환자 집단 등에 주목한다. 반면 민간 펀드를 받았을 경우, 해당 논문은 유방암 환자에 주목한다. 유방암 연구에서 가능한 여러 주목 대상이 존재하는데(환자, 환자 집단, 유방암 세포, 세포 내 신호 전달 물질 등) 펀드 출처에 따라 주목 대상의 단위가 체계적으로 변화한다는 말이다. 이는 국가와 민간의 상이한 관심사에서 기인한다. 국가는 전체 인구의 건강 상태를 관리하고 의료비를 억제하는데 관심을 가진다. 그것이 예산을 절약하는 방법이자 국가를 부강하게 만드는 길이기 때문이다. 개별 환자가 아니라 환자 집단에 주목하는 것은 이를 고려하면 자연스럽다. 분자적 수준의 미세한 대상에 집중하는 것은, 1) 그것이 개별 환자의 특수성을 넘어 전체 인구에 적용 가능한 앎을 만들어 내고, 2) 전체 인구에서 위험 집단을 선별하고 여기에 자원을 집중함으로써 효율적인 건강 관리를 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본 연구는 이를 국가의 ‘분자적 관리 기술’이 ‘탈-개체적 프레임’을 유도한다고 정리했다. 반면 민간 영역의 지원을 받은 지식이 개별 환자에 집중하는 것은, 개별 환자의 치료 성과를 향상시키는 것이 민간 단체의 인도적 관심사에 부합하거나 제약 회사의 이윤 창출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둘째, 의료 지식이 질병의 생물학적 측면에 지나치게 집중할 때, 질병의 구체적 경험에서 발생하는 불만과 요구를 억제하는 효과가 발생한다. 본 연구는 유방 재건술을 둘러싼 상이한 논의 구조를 통해 이를 확인하였다. 유방암 환자 포럼에서, 유방 재건술에 호의적인 태도를 지닌 사용자는 초점이 다양한 비공식적 유방암 의료 지식에 노출되어 있다. 이 지식은 사용자들이 전문 정보 만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다양한 타인과 교류하고 논의하면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유방 재건술에 거리를 두는 사용자는 유방암의 생물학적 정보에 집중하는 비공식적 유방암 의료 지식에 노출되어 있다. 이 사용자들은 주로 제 3자가 만들어낸 전문 정보를 공유하는 용도로 온라인 포럼을 이용하며, 다른 사용자와 한정적인 관계만을 맺고 있다. 왜 초점이 다양한 비공식 지식 구조는 유방 재건술에 호의적인 태도를 유도하고, 생물학적 측면에만 집중하는 지식 구조는 유방 재건술에 유보적인 태도를 유도하는가? 유방 재건술은 생존 보장을 위한 처치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 회복과 심리적 이익을 위한 처치이다. 그런데 생물학적 측면에 집중하는 지식은, 비-생물학적 영역에 존재하는 불만과 불편함으로부터 눈을 돌리게 만든다. 거꾸로 다양한 초점을 지닌 지식은 이런 불편함을 환기한다. 전자에 비해 후자는 사회적/심리적 불편을 극복하기 위한 적극적인 움직임을 유도한다. 유방 재건술에 대한 상이한 태도가 이를 보여준다. 이는 유방 재건술이라는 한정된 대상에 대한 결과이지만, 대부분의 공식적 의료 지식이 질병의 생물학적 특징에 주목하고 있는 현황에 비추어볼 때, 함의가 크다. 이 연구는 의료 지식이 권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다. 우선 객관적이라 여겼던 의료 지식의 형성 과정에 사회적 세력의 이해관계가 일정 부분 개입한다. 때로 그들 사이의 경쟁과 각축이 일어나기도 한다. 나아가 의료 지식은 사람들의 주목과 판단 양상 그리고 네트워크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전통적인 방식의 권력은 아니지만 역시 중요한 권력 현상을(미시 권력) 만들어낸다. 의료 지식에 주목한 본 연구의 전략과 구도는 감염병을 비롯한 다른 질병에도 적용할 수 있다. 또한 자연어 처리를 통해 지식에 접근한 본 연구의 방법적 시도는, 폭증하고 있는 자연어 자료를 활용한 연구에 주요한 참조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