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10일 03시 34분
초록
이 논문은 북한의 집단농업과 농민 사경제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논문은 1945년 해방 이후 북한에서 진행된 토지개혁부터 1950년대의 농업협동화운동, 1960년대의 ‘농촌테제’ 발표, 1970년대의 주체농법 도입, 1990년대의 식량위기, 그리고 2000년대 현재 새로운 농업방침에 이르기까지 북한 사회주의농업 전반의 역사를 다룬다. 논문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가설을 제시하였다. 첫째, 국가는 산업화 발전목표 달성에 필요한 농촌 경제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국가 중심적 집단농업 체계를 확립하였고, 그 과정에서 농민 사경제가 상보적인 기능을 하였다. 둘째, 집단농업의 위기가 발생하자 농민 사경제가 확대되었으며 국가는 위기관리 차원에서 이를 용인했다. 셋째, 농민 사경제의 확대가 탈집단화 과정으로 진행된 것은 아니며 국가는 기존의 발전방향을 계속 추진하기 위해 국가 중심적 집단농업 체계를 유지하려는 정책적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
다른 현실사회주의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북한은 사회주의 초기 산업화 발전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농촌에 대한 적극적인 개조작업을 착수하였다. 공업화에 필요한 자금 조달, 급증하는 산업 노동인구의 부양, 공업 원료의 공급 등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국가가 식량자원을 얼마나 많이 확보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이에 국가는 두 가지의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하나는 양적인 측면에서 농업생산력을 높은 수준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의 계획대로 농업생산을 진행하고 생산결과를 국가가 최대한 많이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농촌의 경제자원에 대해 국가가 강한 통제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 당국은 집단농업 체계를 국가 지배적인 구조로 개조해 갔으며, 이로써 북한농촌에는 국가 중심적 집단농업 체계가 확립된다.
북한은 협동적 소유를 전인민적 소유로 점진적으로 접근-강제적 ‘전환’이 아니라-시킨다는 목표 하에 협동농장에서 국유 부문의 비중을 계속해서 높이는 전략을 추구하였다. 농장의 규모 확대, 농업부문 조직과 기구의 중앙집권화, 농업기술의 근대화, 농업투입재의 국가 독점공급, 농촌인프라 구축에 대한 국가투자 확대 등을 통해 북한당국은 국가중심적 집단농업 체계를 확립시켜 나갔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으로 북한의 농업생산력은 빠르게 성장하였다. 하지만 국가중심적 집단농업 형태가 장기간 유지되고 농업생산력이 발전할 수 있었던 이면에 농민 사경제가 활용되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다.
농장에서 공동노동의 대가로 분배받은 식량과 약간의 현금은 농가의 생계를 유지하는데 부족하였으며, 농민들은 제한적으로 허용된 사경제 부문을 통해 부족분을 보충해야 했다. 농민 사경제 부문은 개인소유의 소토지, 가내수공업, 가내축산, 농민시장 등을 포함하며, 부식물의 조달과 추가 현금소득원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한다. 국가의 식량자급정책에 따라 농장의 경작지 대부분은 곡물생산에 할당되었기 때문에, 농민들은 필요한 부식물을 텃밭에서 자체 조달해야 했다. 또한 농민들은 텃밭에 환금성이 높은 작물을 재배하여 시장에 판매함으로써 부족한 현금수입을 충당하였다. 이런 측면에서 농가의 개인텃밭 경작은 자급자족적 성격과 시장지향적 성격을 모두 지닌다. 이처럼 농민 사경제 부문은 국가중심적 집단농업 체계를 유지하면서도 농가의 생활을 보장하고 농민의 생산의욕을 자극하는 가장 중요한 경제적 인센티브의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논문은 농민 사경제부문이 집단농업과 대립적인 관계라기보다는 상보적 또는 상호의존적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농민 사경제의 허용은 집단농장에 대한 농민의 노동참여를 이끌어내고 농민의 농촌이탈을 막는 주요 수단으로 작용하며, 농민 역시 국가로부터 사경제 활동을 크게 제재를&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