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과소개교수진학부대학원게시판상백자료실
상백자료실

학위논문목록

학위논문목록

[2009] 네덜란드의 사회적 합의과정에 대한 분석 : 헤게모니적 합의-

2016년 10월 07일 10시 40분


초록

한국 사회에서 노사정 간 사회적 합의에 대한 요구가 커지는 가운데, 네덜란드의 노사정 타협 사례는 대표적인 모범사례로 주목받아왔다. 하지만 네덜란드 사례에 대한 기존의 연구들은 합의도출의 조건자체를 설명하기 보다는 합의에 대한 규범적인 정의에서 시작해 경험적 사실들을 그것에 맞추는 방식으로 설명하는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본 논문은 따라서 주요 행위자들의 권력관계 변화를 추적하는 방식을 통해, 네덜란드의 사회적 합의가 대등한 교환관계에 따른 결과도, 행위자들의 합리적인 동의도 아닌 일종의 권력균형에 따른 결과였음을 파악하고자 한다.

노사정 합의에 의한 경제개혁 논의에서 네덜란드의 경제개혁과정은 1990년대 중반 이래 하나의 ‘모델’로 평가될 만큼 주목을 받아왔다. 특히 노사정 간 합의가 경제적 효율성을 증대시키면서도 사회적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제 3의 길’로까지 평가되고 있다. 이런 평가를 뒷받침하는 ‘사회협약론적 관점’은 네덜란드의 합의를 문제해결과정에서 당사자들이 합리적으로 동의한 결과로 설명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관점에서 네덜란드 사례는 다음과 같이 설명되고 있다. 비록 그것이 기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80-90년대 네덜란드는 경제성과면에서 괄목할만한 향상이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임금인상억제를 통한 기업의 경쟁력회복과 협의에 의한 복지국가개혁에 따른 재정건전성확보를 가능하게 만든 정부와 사용자단체, 노동조합 간 포괄적인 합의가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그리고 바로 이 합의는 네덜란드의 합의주의 문화와 전통적인 코포라티즘 제도에 기반한 행위자들의 사회적 학습의 결과이다. 이 같은 합의지향적인 행위가 바로 폴더모델의 핵심이며, 바세나르 협약은 이런 행위로의 전환에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즉, 정부와 노동조합, 사용자단체가 당시의 높은 실업율과 재정적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이 중요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합의의 도출여부는 노사정이 얼마나 책임감 있게, 혹은 합리적으로 행동하는지의 문제, 다시 말해 행위자들의 의지나 인식의 전환문제로 치환된다.  

하지만 이런 관점은 두 가지 점에서 문제를 가지고 있다. 첫째, 합의 개념을 규범적으로 정의하고 있다. 둘째, 합의를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독립변수로만 볼 뿐 합의가 도출될 수 있는 조건과 합의에 따른 분배적 갈등에 대해서는 설명해주지 못하고 있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본 논문은 기존의 논의에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합의의 사회경제적 조건을 정치화(혹은 탈자연화)시키고자한다. 이를 위해서는 합의형성과정이 실제로 어떻게 일어났는지에 대해서 알아야만 한다.

이를 위해 본 논문은 먼저 합의를 ‘명시적인 갈등이 없는 상태’로 정의하고, 합의형성과정에 개입하는 권력의 양태에 따라 합의의 개념을 ‘강요된 합의’와 ‘헤게모니적 합의’로 구분하였다. 그리고 실제 합의형성과정에서 작동하는 권력의 메커니즘을 설명하기 위해 코피의 권력자원론을 활용하였다. 권력자원론에 따르면, 약자(본 논문에서는 노동조합)가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낀다고 할지라도 명시적으로 반대하거나, 저항하지 않을 수 있다. 이는 행위자들 간 권력자원의 차이가 커지면서 생기는 박탈감일 경우 그러하다. 왜냐하면 권력자원의 차이가 커질 경우 저항에 따른 성공의 가능성이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에 설령 박탈감을 느낀다고는 해도 명시적으로 저항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를 우리는 ‘강요된 합의’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룩스가 강조한 보다 ‘급진적’인 관점에서의 권력의 행사는 박탈감 자체를 느끼지 않도록 만들 수도 있다. 이는 약자가 설령 자신들에게 손해가 되는 교환을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교환을 ‘당연한 것’ 혹은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내면화하는 경우를 말한다. 우리는 이 경우를 ‘헤게모니적 합의’라고 규정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 논문은 82년의 바세나르 협약의 도출과정과 90년대 초반 쟁점이 된 장해연금제도의 개혁과정에 대한 분석을 통해 합의의 조건과 그에 따른 합의의 성격에 대해 설명하고자 하였다. 이런 관점에서 본 논문은 합의도출의 조건에 따라 네덜란드의 합의형성 과정을 역사적으로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하였다.

먼저 70년대는 합의 없는 협의의 시기로서, 이 시기에는 노동당과 기민당, 노동조합과 사용자단체의 권력자원이 대등한 상황이었다. 다른 한편 그들은 당시의 경제위기를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였다. 하지만 80년대에 접어들면서 노동당이 내각에서 배제되고, 노동조합의 권력자원이 약화되면서 노동조합은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원칙적인 동의의 대가로 실질적인 임금삭감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말해 교환율이 사용자측으로 기울었지만 노조는 저항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로썬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시기는 일종의 ‘강요된 합의’의 시기로 규정할 수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건은 90년대 초반 장해연금제도 개혁국면에서 나타났다. 장해연금제도개혁과정에서 노동조합은 임금억제에 대한 합의와는 달리, 명시적인 저항노선을 택하게 된다. 그 이유는 노동조합이 ‘저항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 오판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오판에는 당시 연립정부에 참여하고 있었던 노동당가 노동조합에게 보냈던 혼란스러운 신호가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즉, 노동조합은 노동당이 자신들의 입장에 힘을 실어주리라 기대했지만(실제로 노동당은 그런 신호를 보냈다), 궁극적으로 노동당은 ‘정책지향전략’보다는 ‘내각참여지향전략’을 택함으로써 내각의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던 기민당의 입장에 동조하였다. 따라서 이 시기에 표출된 갈등은 바세나르 협약국면에서의 ‘동의’와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는 80-90년대 내내 노동당과 노동조합의 권력자원이 기민당과 사용자단체에 비해 약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 시기까지만 하더라도 정부와 사용자단체, 노동조합은 합의지향적인 태도를 보여주지 않았고, 그에 따라 긴장이 내재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네덜란드의 합의도출과정을 이런 식으로 재구성하게 되면, 일반적으로 알려진 ‘폴더모델’담론과 실제합의도출과정에서 괴리를 찾을 수 있게 된다. 폴더모델 담론은 90년대 중반 네덜란드의 경제가 호조를 보이고, 특히 국제적으로 네덜란드 사례에 대한 찬사가 이어지는 가운데 등장하였다. ‘합의에 의한 개혁의 성공’을 핵심으로 담고 있는 폴더모델담론이 널리 수용되는 과정에서 주요 행위자들은 80-90년대를 ‘합의의시기’로 회고적으로 재해석하게 된다. 특히 이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약자였던 노동조합은 폴더모델 담론이 강조하는 ‘성공스토리’에서 배제되지 않고, 자신들의 정당성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80년대의 개혁기조에 반대해왔던 기존의 입장을 수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즉, 임금인상억제와 긴축재정정책을 핵심으로 하는 80-90년대의 공급측면 개혁기조에 대한 (의도적이고도 일관된) 합의가 있었다는 ‘모델’논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게 된다. 그럼으로써 90년대 중반 이후부터 네덜란드에서는 공급중심개혁기조에 대한 헤게모니적 합의가 자리를 잡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