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07일 10시 40분
초록
탈북 후 남한에 입국하는 북한이탈주민이 계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들은 북한 거주 당시 생계형 탈북을 감행했어야 하거나, 북한 사회주의 체제에서 발생한 정치적 동기로 다른 체제와 국가로 이주하고 있다. 과거에는 냉전 대립 속에서 이데올로기적 갈등이 상당히 심한 상태였기에 분단 체제 속에서 이들 신분 또한 남한 체제 우월성을 증명하는 정치적 성격을 갖고 이념화되기 쉬웠고, 대량 이주에 대비한 법제도는 만들어지지 못하였다.
분단 이후 전개된 남북한의 독립적 변화 속에서 주민들은 다른 체제에서 사회화되어 다양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 그러하기에 탈북 후 남한에 입국한 북한이탈주민은 이전에 경험하지 않은 상황에 처하기 쉽다. 한국 헌법에서는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기에, 북한이탈주민의 한국적은 인정되지만, 그것이 남한 정착 이후 이들이 겪게 되는 정체성 혼란을 무마하는 요소가 될 수 없다. 또한 남한 법률이 이들을 적용 대상으로 고려하며 제정되지 않았기에, 북한이탈주민은 남한에서 법제도적 측면에서의 갈등과 사회?문화적 영역에서의 소외와 차별?충돌을 동시적으로 경험한다.
1997년 이들의 정착을 지원하기 위한 법인,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이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동일 민족’이라는 가치 속에서 생겨난 ‘동포애’가 있었다. 점차 분단 상흔을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지만, 동포애는 여전히 강력한 이념적 지향으로 작동한다. 여기에 인도주의, 인권의식, 헌법정신이 결합되어 적극적인 정부 정책 추동 동력이 생겼다.
이 법은 두 가지 큰 특징을 지닌다. 우선 한국 사회에서 북한이탈주민이 법제도적 측면에서 동등한 지위를 누릴 수 있는 구체적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 다음으로 이주와 자의식 성숙 등에 따라 가속화되고 있는 다문화 사회의 소수자 정책으로서, 이들이 남한 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게 지원하는 역할을 모색한다.
초기 제정 이후 북한이탈주민 지원법은 여러 차례 개정을 거쳤다. 정부가 제안하여 결정된 법률 내용은 이들이 한국 사회에서 안정적으로 정착하는 모든 과정을 보장할 수 없다. 동일 민족 문제이기에 통일부라는 정부 부서에서 적극적인 정책 형성과 실행에 주력하지만, 정부 정책은 남한 사회 중심에서 비롯되는 동화주의적·관리주의적 입장이 반영되었기에, 당사자 정황을 고려한 정착 지원으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새로운 체제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자본주의 경제 체제로의 편입을 요구받고 있기에 생겨나는 마찰도 크다. 북한 사회주의 체제에서 사회화를 거친 후 이주한 사람들은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 속에서 경쟁을 요구받는 상황 자체가 낯설 것이다.
정책과정을 거쳐 변화하는 법률의 제정·개정에는 대내외적 요인이 구조적 바탕을 조성하였다. UN 가입, 냉전 해체, 북한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 압력과 초국적 사회운동의 영향,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확대로 인해 이주자 시민성 부각, 자본주의 사회의 소외 계층에 대한 복지정책 변화 등이 대외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대내적으로는 ‘민족’ 관념이 중시되고 남한 사회에서 시민의 지위가 보장된 점, 남한 경제 규모 속에서 북한이탈주민을 지원할 수 있는 재정이 마련될 수 있다는 점, 시민사회의 성장 속에서 정부 중심의 정책 형성 패턴에 변화가 있었다는 것, 북한이탈주민 등과 같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공감과 인정의 문화적 분위기가 형성되었다는 점 등을 법 제정과 변화의 구조적 조건으로 꼽을 수 있다.
북한이탈주민 급증이라는 급박한 현실적 이유로 만들어진 법률이 이들의 이주가 초래하는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미 안정적으로 정주한 남한 주민들이 북한이탈주민을 받아들이려고 체계적인 준비를 했다기보다, 남한 사회는 한국 사회 자체의 민주주의 진전과 경제발전을 이뤄왔다. 그렇기에 이 법률은 문제가 생겨날 때마다 개정되어야 하는 일시적이고 임시적인 속성이 다분한 법으로 근원적인 한계를 가진다.
북한이탈주민의 이주가 본격화된 지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의 법률 개정 과정 역학을 살펴봄으로써 법률적 성격과 참여 행위자에서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초기의 ‘보호’ 중심의 지원책에서 ‘자립?자활’로 정책 지향점이 바뀌었다. 또 법률 개정에 점차적으로 비정부 단체, 즉 민간 영역과 북한이탈주민 당사자들의 참여가 확대되어 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처음 법 제정은 소수 정책결정자들 위주로 이루어지는 정책과정(policy process)이었다. 이렇게 정부 측 입장이 주도하던 상태에서 문제를 직접 경험하는 당사자들이 개입하여 이들 의사가 반영되는 형태로 법률 개정 과정이 달라지고 있다.
한국 사회 분단 상황이 특수하고, 이것을 전담으로 하는 정부 부서(통일부)가 있으며, 그 산하에는 한국 사회에 정착한 북한이탈주민을 집중 정책 대상으로 하는 ‘정착지원과’과 있기에 북한이탈주민들의 의사는 이후 정책 개입으로 이어지기 쉬웠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소수자성을 강조하고, 경제 발전과 이념 대립을 넘어, 불평등한 상태에서 차별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논의가 확대되며, 시민의 사회권이 부각되는 상황에서 그 힘을 얻기도 하였다. 시민 사회와 시민성의 발전, 한국 사회의 민주화, 북한이탈주민 관련 민간 영역의 확대 등을 통해 소수 전문가 중심의 정책 결정의 영역이 그 경계를 무너뜨리고 확장되고 있다.
지원 정책 자체가 가지는 현실적 문제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도, 현장에서도 지속적으로 지적되고 있다. 여기서 정책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두 가지로 대변될 수 있는데, 우선 첫째, 분명 통일부 산하의 적극적 지원 정책이 마련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나, 북한이탈주민 당사자들이 가지는 입장을 미리 반영하지 못하였기에 이들이 마주하는 현실과 괴리를 가지는 지원책이 마련되고 시행되는 특징이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당사자들이 현실에서 마주하는 문제 중 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하는 심리적 혼란이나 사회체제에 익숙해지는 과정을 생략한 채 취업 등 경제적 측면에서의 지원, 교육 체제로의 편입 등에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으로 평가할 수 있다. 둘째 현재까지 북한이탈주민을 ‘전체’로 바라보는 일률적 대상화 속에서 지원 정책이 이루어졌기에 여러 가지 폐해가 나타나고 있다. 북한이탈주민은 남한 입국 당시 가족 입국, 여성 비율 증가 등에 따라 개인마다 여러 정황적 차이를 드러내고 있는데, 이것은 남한 정착 시 다양화된 정착 지원을 이뤄지는 방향으로 정책변경이 일어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정부는 북한이탈주민들을 자본주의 사회에서 필요한 자생적인 노동력으로 정착시키려 하지만, 이것이 결과적으로 북한이탈주민의 저소득화와 배제화를 가져오고 있다. 즉 이들은 자본주의 사회로 편입되지만, 가지고 있는 사회적 자본이 일천한 상황에서 충분한 재사회화 과정을 거치지 못한 상태이기에 경제적 소득이 높게 보장되는 계층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대부분 경제적 하위 집단으로 편입되고 있다. ‘장기적 로드맵’이 없는 상태의 지원법이기에,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 익숙하지 않은 북한이탈주민에게서 제대로 작동할 수 없는 부족분이 이미 경험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앞으로 북한이탈주민들이 계속 늘어날 것임을 고려한다면, 지금과 같은 일시적이고, 임시방편적인 법률이 아닌, 전반적으로 설계된 법률이 필요할 것이고, 현재 나타나는 북한이탈주민의 ‘게토화’를 막는 방향의 정부 개입이 고민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