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07일 10시 39분
초록
현대사회에서 범죄에 대한 두려움(Fear of Crime)은 범죄피해 만큼이나 중요한 사회문제로 간주되고 있다. 범죄에 대한 두려움이 클 경우, 개인에게는 범죄예방시설을 설치하는 등 경제적 손실을 입히거나 심리적 불안감에 따른 정신적 고통과 행동적 제약을 야기할 수 있으며, 사회적 차원에서는 신뢰의 붕괴에 따른 사회통합의 저해로 이어질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범죄에 대한 두려움의 계층적 차이에 관해 살펴보았으며, 그러한 차이가 내포하는 사회적 함의를 찾고자 했다. 기존 범죄학 이론에서는 하층민일수록 범죄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는 대부분 서구사회를 바탕으로 이루어졌으며, 실제 연구결과 역시 일관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한국사회의 맥락에서 고찰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후기현대사회를 위험사회(risk society)로 간주하는 Beck의 시각에서는 위험의 분배가 계층과 무관하게 이루어진다고 보는데, 위험의 분배와는 별개로 범죄라는 위험의 두려움은 계층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알아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본 연구에서는 ‘제7차 한국 범죄피해조사(2005)’ 자료를 이용하여, 계층에 따라서 범죄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다른 위험해석변인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는지 확인하고자 했다. 독립변인인 계층적 지위는 학력, 소득, 직업 각각에 대해 가중치를 부여하여 구성하였으며, 종속변인인 범죄에 대한 두려움은 가구범죄, 개인재산범죄, 개인폭력범죄, 성폭력범죄로 구분하여 분석을 실시하였다. 또한, 종속변인에 영향을 미치는 매개변인으로는 범죄피해, 일상활동, 지역사회무질서, 집합효율성과 같은 객관적(경험적) 변인과 취약성에 대한 인지, 위험에 대한 인지와 같은 주관적(인지적) 변인으로 구성하였다. 그리고 연구모형을 바탕으로 일원공분산분석(one-way ANCOVA), 중다회귀분석(multiple regression analysis), 경로분석(path analysis)을 통해 연구가설을 검증하였다.
실증적 분석결과만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계층에 따라 범죄피해경험에서 차이가 있는지를 알아보았으며, 이때 범죄피해경험은 직접피해와 간접피해로 구분하여 분석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 범죄피해 경험은 간·직접피해 모두 계층적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 일상활동 변인의 계층적 차이를 살펴보았다. 이때, 일상활동은 범죄와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야간활동의 빈도’, ‘집을 비우는 빈도’, ‘외양적 화려함의 정도’로 구성되었으며, 분석결과 모두 상류층일수록 이러한 활동을 더욱 많이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셋째, 계층에 따라 지역사회무질서 정도에서 차이가 있는지를 알아보았으며, 이 때 지역사회무질서는 ‘물리적 무질서’와 ‘사회적 무질서’로 구분하여 분석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 계층이 높을수록 물리적 무질서가 낮은 것으로 나타난 반면, 사회적 무질서에서는 계층에 따른 차이가 없었다. 넷째, 계층에 따른 집합효율성의 차이를 살펴보았다. 이때, 집합효율성은 ‘주민들 상호간의 신뢰와 응집력을 바탕으로 커뮤니티 공동선을 위해 흔쾌히 그리고 기꺼이 개입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상태’를 의미하며, 본 연구에서는 ‘이웃간유대’와 ‘거주년수’를 통해 측정하였다. 그 결과, 모든 분석에서 상류층일수록 집합효율성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섯째, 주관적 매개변인으로서 취약성에 대한 인지와 범죄위험에 대한 인지의 계층적 차이를 살펴보았다. 이때 취약성에 대한 인지는 ‘피해가능성’, ‘피해심각성’, ‘방어능력’으로 구성되었으며, 범죄위험에 대한 인지는 범죄종류에 따라 구분하였다. 분석 결과, 이들 모두 계층에 따라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범죄에 대한 두려움의 계층적 차이를 살펴보았다. 범죄에 대한 두려움은 범죄종류별로 구분하여 분석하였으며, 모두 계층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분석결과는 크게 두 가지 차원에서 함의를 제시할 수 있다. 먼저 위험사회에서 계층이 가지는 지위에 관한 것이다. Beck의 위험사회론을 따르면 오늘날의 위험은 모든 계층에 평등하게 영향을 끼치며, 범죄라는 사회적 위험에 대해서도 계층의 의미는 크게 상실하게 된다. 이는 범죄피해경험과 범죄위험에 대한 인지에서 계층적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던 본 연구의 분석결과와도 일치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결과와는 달리 범죄에 대한 두려움에 있어서는 계층적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으며, 이는 위험의 분배(distribution of the risk)와 위험에 대한 두려움(fear of the risk)이 서로 별개의 문제라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Beck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계층에 무관하게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따라서 위험의 발생가능성에 있어서도 차이가 없다고 한다면, 안전에 대한 욕구가 더욱 크고 피해에 대한 민감성이 큰 상류층이 더욱 두려움을 많이 느끼게 될 것이다. 위험사회론이 부상하고 중요하게 받아들여진 기저에는 위험에 대해 불안을 느끼는 개인들의 의식이 있었으며, 따라서 근심(concern)이나 불안(anxiety), 공포(fear)와 같은 개인들의 심리나 의식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단지 위험이 평등하게 분배된다고 하여 그에 대한 의식도 차이가 없으리라고 전제할 수는 없다. 위험의 분배라는 측면에서는 전통적인 계층의 의미가 상실할 수도 있겠지만, 위험에 대한 두려움에 있어서는 오히려 더욱 중요한 사회적 주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또 다른 함의는 그동안의 이론적 설명이나 서구에서 수행된 선행연구 결과와는 반대로 계층적 지위가 높을수록 범죄에 대한 두려움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차이는 결국 서구사회와는 대별되는 한국사회의 특성이 무엇인지에 관심을 가지게 하는 바, 본 연구에서는 계층간 거주공간의 분리양상에 주목하였다. 즉, 기본적으로 거주공간의 수평적 구분이 명확하여 범죄에 취약한 슬럼지역에 하류층이 밀집되어 있는 서구사회와는 달리, 한국사회에서는 수직적 구분이 이루어지고 있다. 서구사회에서는 슬럼지역의 취약한 치안환경 때문에 하류층일수록 더욱 두려움이 높고, 비버리 힐스로 대표되는 상류층의 주거공간은 이웃 간의 감시와 대응으로 더욱 안전감을 느끼게 된다. 반면, 한국사회에서는 계층이 서로 혼재되어 있는 양상을 보이면서도, 상류층은 타워펠리스로 대표되는 초고층건물로 밀집하면서 지역사회와의 연대성은 약해지고 범죄에 대한 대응방식도 개인주의화가 이루어진 결과 서구사회와 같은 안전감을 가질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