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07일 10시 39분
초록
세계화의 강력한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은 신자유주의는 자유방임주의(laissez-faire)를 바탕으로 모든 국가들로 하여금 탈규제, 탈개입, 민영화 등과 같은 경제 개혁을 실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특히 국제통화기금(IMF), 세계무역기구(WTO),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같은 세계기구들은 세계화와 관련하여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하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함으로써 세계 경제를 단일한 시스템 내로 통합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외이사제도는 국가마다 상이한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기위해 전 세계적으로 도입된 제도이다.
한국의 경우 IMF 경제위기 이후 한국식 기업지배구조의 개선을 위해 사외이사제도를 1998년에 도입하였다. 특히 족벌경영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재벌은 기업지배구조개선의 직접적인 표적이 되었다. 한국의 재벌들은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미국식 기업지배구조와 달리 소유의 집중을 통해 경영과 소유를 모두 통제하는 구조를 띠고 있다. 이러한 재벌의 기업지배구조는 장기적인 투자를 가능케 함으로써 비약적인 성장을 이룩하였다. 하지만 사외이사제도가 도입되면서 재벌들은 자신들이 장악하고 있던 이사회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실행하도록 요구받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외이사제도는 한국식 기업지배구조 내에 어떻게 정착해가고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대리인이론, 정당성이론, 자원의존론이라는 이론적 배경과 네트워크 분석이라는 방법론을 바탕으로 하였다. 특히 네트워크 분석은 한국의 사외이사제도를 분석하는 데 있어서 유용한 이론적, 방법론적 틀을 제시하고 있다.
기존의 사외이사 연구에 사용되던 중앙성 지표들과 달리 본 논문에서는 Bonacich Power Centrality를 사용하였다. Power Centrality는 이사를 서로 공유하는 미국식 겸직이사와 달리 사외이사 선임에 있어 방향성이 존재하는 한국식 사외이사를 분석하는데 유용한 이론적, 방법론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또한 사외이사의 활동을 평가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자료가 부족한 상황 속에서 네트워크분석은 중앙성 분석을 통해 어떤 기업이 사외이사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기업들이 어떤 조직들을 선호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줌으로써 사외이사제도의 정착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효과적인 분석틀을 제공하고 있다.
분석 결과 한국의 재벌들은 기업지배구조개선이라는 세계적인 압력에 의해 감시의 기능으로서 사외이사제도를 받아들였지만 기업의 규모가 클수록, 기업과 연루된 소송건수가 많을수록 기업의 중앙성이 높다는 결과를 통해 자원의존론적인 측면에서 기업을 둘러싼 불확실한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사외이사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특히 경제위기의 시기인 1998년부터 2000년까지는 은행의 중심성이 상승했으며, 기업과 관련된 소송건수가 증가한 2005년부터 2007년까지는 법무법인의 중심성이 상승했다는 네트워크분석결과는 본 논문의 결론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결론적으로 볼 때, 한국의 재벌들은 사외이사제도를 수용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위해 다른 방식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세계화란 공통규범이 수직적으로 모든 국가들에게 일방적으로 전파되는 과정이 아니라 지역적인 맥락에서 각 국가들이 능동적으로 실행하는 과정을 통해 실현된다는 기존의 사회학적 연구의 흐름을 뒷받침하고 있다. 특히 지역적인 맥락에서 세계화를 능동적으로 실행한다는 관점에서 한국의 사외이사제도는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혈연, 학연, 지연과 같은 연줄망은 중요한 관계적 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외이사는 사회적 자본으로서 재벌들에게 이익이 되는 다양한 자원들을 제공해줄 수 있다. 다시 말해 사외이사제도는 한국이라는 지역적인 맥락에서 관계적 자원으로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