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생리휴가제가 무효화되고 생리공결제가 실시된 9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두 제도의 변화에 개입한 월경 담론들을 분석의 대상으로 설정하고, 그 성격과 특징을 분석했다. 특히 한국사회에서 ‘월경하는 몸’이 어떻게 인식되고, 재현되는지에 주목했다.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몸과 권리 사이의 문제에 대해 고민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위한 사례로 임신과 출산에 비해 월경경험은 상대적으로 관심을 받지 못해왔다. 특히 한국에는 이와 관련한 법적제도인 생리휴가제가 오래도록 존재해왔다. 하지만 그간의 사회과학 연구들은 이를 단지 제도적이고 법적인 차원에서만 바라봄으로써 생리휴가제가 몸 경험의 하나인 월경에 대한 한국사회의 수다한 담론과 이들의 작용을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였다. 이처럼 본 논문은 제도의 변화를 둘러싼 논쟁들에서 나타난 월경하는 몸에 대한 인식과 그 내용들을 분석하고, 월경경험과 정체성 형성을 이와 관련지음으로써 이들의 권리문제가 끊임없이 몸의 문제와 연동되는 담론적 장field의 역동성을 그려보고자 했다.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제도의 변화를 둘러싼 월경담론은 크게 네 가지로 추출되었는데, 경제담론/모성담론/의학담론/인권담론이 그것이다. 이 중 생리휴가제의 무효화와 생리공결제의 실시라는 변화의 물꼬를 튼 담론은 각기 경제담론과 인권담론이었다. 생리휴가제의 경우 90년대 후반 신자유주의를 자신의 이데올로기적 이론으로서 채택한 경제담론에 의해 사회적 논쟁의 장에 등장했다. 생리휴가제는 불필요한 ‘유급휴가’라는 차원에서 폐지 및 무효화되어야 하는 것으로 제기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생리휴가제에 대한 모든 논쟁의 논점은 임금이라는 비용문제로 귀결되었다. 반면 생리공결제는 월경과 월경경험 자체를 이슈화시키고자 했던 일련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담론적 무기로서 채택한 인권담론을 통해 논쟁의 장에 등장했다. 1999년 시작된 <월경페스티벌>을 시작으로 90년대 후반 한국사회에서는 월경에 대한 대안적 시각들이 등장했다. 무엇보다 90년대 후반 인권이라는 키워드가 모든 논의의 문턱으로 등장했다는 사실 역시 주목해야 한다. 이는 학교라는 공적 영역에서 월경하는 몸으로서 학업을 수행해야 하는 이들의 문제를 부각시키도록 자리를 마련했다. 이런 차이는 동일한 제도가 전혀 다른 경로를 걷게 된 중요한 요인이다.
둘째, 생리휴가제가 무효화되고 생리공결제가 실시된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중반의 시기 동안, 한국사회에서 모성담론은 큰 의미변화를 겪었다. 한국에서 모성담론은 매우 느슨한 의미에서 여성주의 그것 자체이기도 했다. 90년대를 지나며 더욱 활발해진 여성/노동운동을 통해 모성 개념은 점점 더 확대되어 갔으며, 이런 흐름은 2002년 모성보호법의 통과 시점에서 정점에 이르렀다. 그러나 바로 이때 경제담론은 생리휴가제의 무효화를 주장했고, 이를 ‘조건’으로 모성보호법의 통과여부를 논하려했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계의 전략은 모성보호 입법과정에서 생리휴가제의 언급 자체를 차단하는 것이었다. 모성보호법의 통과와 다른 여성관련 조항을 바터하지 않기 위해 세웠던 이러한 입장은 그러나 ‘모성’이라는 개념을 축소시키고 만다. 생리휴가를 모성보호 입법논의에서 분리시키며 모성의 경계는 생물학적 생식기능의 차원에서 결정되는 것으로 후퇴했다. 이런 결과는 제도의 존폐여부에 대해 정당화 담론으로서의 모성담론이 수세적으로 대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리공결제의 요구는 이와 달리 제도의 정당성을 찾아가는 보다 적극적인 과정이었다. 그래서 새로운 개념이 등장했는데, 그것은 바로 ‘여성건강’이다. 여전히 생리공결제는 모성이라는 이름과 완전히 분리되지는 않았지만 그 내용은 이전과 같은 것이라 볼 수 없었다.
셋째, 무엇보다 두 사건은 월경하는 여성에 대한 의학담론의 한국적 특수성을 보여준다. 생리휴가제의 무효화와 생리공결제의 실시 과정에서 보여진 흥미로운 점은 제도에 대한 찬반 여부를 떠나, 어떤 담론을 통해 논쟁에 개입했는지를 떠나 월경이라는 생리적 현상에 대한 비논리적 언설들이 난무했다는 점이다. 이는 월경이라는 생물학적 현상에 대해 가장 직접적인 언어를 생산해내는 의학담론의 무관심에서 기인했다. PMS연구로 대표되는 서구의 연구들은 월경경험을 질병론적 관점에서만 포착함으로써 여성들의 몸 경험을 왜곡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PMS연구의 열풍은 한편으로는 그동안 은폐되어 있던 월경경험을 공적인 장에서 구체화시켜주고, 현실화시켜주는 기능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의 의학담론 생산자들은 월경양상에 완전히 무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국에서 여성들의 몸은 ‘직접적이고도 구체적인’ 생식기능과 직결되지 않는 한 의료화의 영역에 편입되기도 어렵다. 이때 90년대 후반부터 ‘여성건강’을 본인들의 핵심적 연구주제로 자리매김하며 등장한 간호학 연구들에 주목해야한다. 여성건강의 맥락 하에서 수행된 간호학의 월경연구들은 생의학적 월경용어들을 재정의하며, 월경의 일상성과 다양성을 강조한다. 생리공결제의 요구는 간호학을 차용한 의학담론의 합리적인 용법을 통해 제기되었다.
넷째, 생리휴가의 무효화 과정에서 월경경험은 전적으로 여성의 생식기능에 의해 비가시화되었다. 월경이 ‘생식기능으로서의 모성’과 관련이 있는가 없는가, 출산을 통한 인구재생산과 여성의 노동투여 중 비용적 측면에서 무엇이 더 유리한가에 따라 생리휴가의 존폐가 논의되었다. 생리휴가제의 무효화 과정은 즉, 전형적인 탈구현상을 보여준 것이다. 탈구란 몸의 어느 부분을 ‘기능적 차원’에서만 해석하고 이를 과도표상함으로써 여성의 유기체적 몸 뿐만 아니라 그 몸이 경험하는 사회적인 측면을 완전히 비가시적 영역으로 몰아버리는 것을 말한다. 탈구는 우리가 거주하는 세계가 남성 몸만을 기준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사실과 그곳에서 유일하게 인정되는 차이란 기능화된 육체, 생식기능 뿐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탈구현상의 맥락에서 제공되는 권리는 (그것이 무효화되었든 존재했든) ‘월경하는 여성’에 대한 것이 아닌 ‘생식기능’에 대한 권리이다.
이러한 권리의 형식 및 의미는 ‘유기체 몸 - 몸 이미지 - 사회담론으로서의 몸 인식’이라는 세 가지 차원의 결합과 관계망에 문제를 발생시킨다. 이 세 차원의 나름의 일치성은 몸의 통합성을 보증해주며, 몸 주체는 이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안정적으로 형성해나갈 수 있다. 그러나 탈구현상은 이 세 차원의 일치성의 경로로 유일하게 생식기능만을 제공한다. 이것은 차이의 인정이 아니라 차이의 내용을 생물학적 차원에서만 구성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자신의 월경경험을 생식의 차원에서 설명하고 해석할 수 있는 경우라면 다행이지만, 대개의 경우 월경경험은 양가적이 된다. 현재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일치성의 경로가 하나일 것이라는 강박에서 벗어나 몸의 통합성의 조건들을 마련해야 하는 일이다. 그때 차이의 기입 자체를 넘어 ‘어떤’ 차이인가에 대한 질문들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야 다양한 차이의 주체들이 동등한 시민이자 권리의 수혜자로 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생리공결제는 이에 대한 최초의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생리공결에 대한 요구는 우리들이 거주하는 이 세계에 ‘다른 몸’이 있음을 알리려던 시도라고 읽어야 한다. 그러므로 생리공결제의 요구는 ‘기능으로서의 권리’가 아니라 ‘몸으로서의 권리’에 대한 것이었다.
이 연구는 생리휴가제와 생리공결제를 단순히 제도적, 법적 차원에서 접근하지 않고 이 제도들이 필연적으로 월경과 월경하는 여성에 대한 인식들을 산출할 것이라는 점에서 시작했다. 그런 면에서 월경, 월경하는 몸으로 대표되는 ‘차이’를 한국사회가 어떻게 재현하고 인식하는지를 분석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