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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평화운동으로서 한국 병역거부운동 연구 : '양심의 자유'와 '반군사주의'간의 긴장관계를 중심으로-

2016년 10월 07일 10시 37분


초록

2000년대 이후 등장한 한국 병역거부운동은 지난 9년 동안 늘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에 관한 연구는 대부분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형사처벌 문제를 제도적으로 해결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왔다. 이러한 연구의 편향으로 인해 병역거부운동은 온전하게 다루어지지 못했다. 병역거부운동에는 개개인의 양심이 존중되기 위한 ‘양심의 자유’ 보장이라는 측면과 함께 ‘반군사주의’적 가치를 실현하는 평화운동으로서의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본 연구는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 평화운동의 측면에서 한국 병역거부운동을 분석했다.

이를 위해 두 가지의 접근방식을 택했다. 먼저 기존의 법률?제도적 측면의 접근이 아니라, 이 실제 운동이 등장하고 활동해나가는 과정에서 주되게 영향을 미친 요인들과 그것에 대응하는 운동의 양상을 분석했다. 그 과정에서 병역거부운동이 한국사회의 군사주의와 어떤 대립지점을 만들어냈는가를 집중적으로 살펴보았다. 또 다른 접근방식은 병역거부운동 내부에 존재하는 ‘양심의 자유’와 ‘반군사주의’라는 두 지향이 어떤 긴장관계를 형성하는 가를 살피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운동이 확장되는 과정을 보다 분석적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한국 병역거부운동은 뒤늦게 사회운동으로 등장했다. 이러한 지체의 원인으로는 한국사회의 군사주의와 이단 낙인, 여호와의 증인이 가진 종교적 특성을 들 수 있다. 그렇기에 2000년 이후 이 운동이 등장하고 성장하는 과정은 이 원인들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이었다. 외국 활동가로부터 병역거부운동의 제안을 받은 평화운동의 주체들은 가려졌던 고통을 공론화시켰다. 소수종파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운동 초기에 상당한 장애요인이었지만, 오태양을 비롯한 정치적 병역거부자의 등장은 병역거부가 일부 종파만의 것이 아닌 보편적인 행위라는 것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강고한 군사주의로 인해 병역거부운동은 스스로의 활동을 ‘대체복무제 개선’으로 집중했고, 반군사주의 측면의 문제의식을 일정 부분 제한했다.

그러나 운동이 진행되면서 이러한 타협지점에 긴장관계가 발생한다. 제도화된 대체복무제가 평화운동과 큰 연관을 가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해외의 사례가 한국 활동가들에게 대체복무제 개선운동의 한계점을 인식하게 만들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다양한 신념을 가진 정치적 병역거부자가 등장했던 것 역시 이러한 긴장관계의 주된 요인이었다. 이들은 피해자가 아닌 저항의 주체로서 스스로를 규정하고, 대체복무제를 넘어서는 실천을 만들어갔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 속에서 내부의 긴장관계가 온전하게 드러나지는 못했는데, 대체복무제 개선이라는 목표가 가진 지배력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대신 대체복무제 개선운동의 담론을 보다 확장하고, 비정기적인 반군사주의 캠페인 등을 진행하는 방식을 택하게 된다.

반군사주의 운동으로서 지금까지의 병역거부운동을 평가해본다면 다음과 같다. 먼저 국가 폭력에 대한 문제제기의 측면이 있다. 병역거부운동은 국가가 독점한 폭력 자체의 정당성에 대해서 도전한 최초의 사회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문제제기가 가해자로서의 기억에 근거했다는 점은 주목할 부분이다. 한국 전쟁 당시의 민간인 학살과 베트남?이라크 파병, 80년 광주의 기억을 바탕으로 병역거부자들은 총을 들 수 없다고 선언했다. 이러한 국가 폭력에 대한 문제제기는 그동안 시민사회가 배제되어왔던 안보섹터에 대한 도전으로 이어지게 된다. 군대 내부의 인권문제 제기, 전?의경제 폐지, 국방력의 적정 수준에 대한 논의 등은 병역거부운동이 주요한 역할을 했던 안보섹터의 개입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모범적인 군필자와 비겁한 병역기피자의 이항구도로써 이루어졌던 징병제 담론 역시 ‘당당한 거부자’의 위치가 만들어지면서 균열이 생겼다. 더 나아가 병역이란 것을 거부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이었던 한국 사회에서 스스로의 신념을 밝히며 군대를 가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한 병역거부자들은 그동안 부재해왔던 병역에 대한 저항의 언어를 구성해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동성애자의 정체성과 군대 문화에 대한 혐오를 바탕으로 병역거부를 선언한 유정민석, 이라크 전쟁에 반대해 현역 군인의 신분으로 파병반대와 부대복귀거부를 연계시킨 강철민과 전?의경제 폐지를 주장하며 병역거부를 선언한 이길준 등의 실천은 병역거부운동의 확장에 주요한 역할을 했다.

평화운동으로서의 병역거부운동의 한계지점은 다음과 같다. 활동가들은 이 운동이 평화운동으로서 성장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으고 있지만, 대체복무제 개선이 오랜 시간 정부의 반대에 부딪히면서 그 이상의 의제와 활동을 구성하지 못했고, 정치적 병역거부자가 늘어나는 것 역시 도모하지 못했다. 또한 내부의 여성 활동가를 비가시화 시켰고, 사회에 만연한 병역기피 분위기에 대해 반군사주의적인 개입을 하지 못했다. 이런 조건 속에서 병역거부운동의 이후를 모색할 필요성은 크다. 먼저, 지속적인 제도 개선의 영역이 있을 것이다. 복무 대상자의 범위나, 기간을 조정하는 것과 함께 선택적, 절대적 병역거부 인정 문제가 있다. 또한 운동의 영역을 넓혀서 보다 다양한 반군사주의 활동을 만들어가는 것 역시 병역거부운동의 이후 과제라고 할 수 있다.

2007년 국방부는 병역거부자를 사회복무제로 편입함으로써 형사처벌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권 교체 이후 이 결정은 무기한 유보된 상태이다. 대체복무제 개선이 한국 병역거부운동에서 중요하며 시급한 과제라는 것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운동의 주체들은 보다 긴 호흡으로 평화운동으로서의 병역거부운동이 펼칠 실천을 모색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