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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후기 푸코의 국가론 연구 : 통치성(Governmentality)을 중심으로-

2016년 10월 07일 10시 37분


초록

이 논문은 푸코의 국가론을 규정하고, 이를 기존의 국가론과 비교함으로써 푸코 국가론의 특이성을 드러내려는 시도이다. 푸코에게 국가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통념과 달리, 푸코에게는 분명한 국가론이 존재한다. 나는 이런 푸코의 국가론을 ‘전략적(strategic) 국가론’이라 부를 수 있으며, 그것이 기존 국가론의 여러 약점을 극복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기존의 국가론을 주권이론, 맑스주의 국가론, 전략관계적 국가론으로 분류했다. 물론 이외에도 여러 수많은 국가론들이 있지만, 이 세 입장이 수많은 국가론들이 공유하고 있는 몇 가지 전제를 보여준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주권이론은 국가를 절대적이며 단일하고 스스로에게 근거하는 실체로 여긴다. 맑스주의 국가론은 국가를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필연적 결과물로 파악한다.

우선 푸코의 전략적 국가론에서 국가는 실체가 아니다. 국가가 환상이라는 말이 아니다. 대신 국가는 구체적 실천들과, 그것을 관통하는 전략의 효과일 뿐이다. 푸코에 따르면 근대 국가는 ‘통치성’(Governmentality) 이라는 특정한 전략의 효과이다. 통치성은 근대 국가 형성 과정에 존재했던 ‘국가이성’(raison d'Etat)이라는 전략이 한계에 봉착하고 변형됨으로써 발생했다. 16세기, 유럽이 중세로부터 벗어나면서 세속적인 정치질서가 나타났다. 국가들이 신에서 벗어나 부강함 그 자체를 목적으로 가지게 되었다. 이에 대내적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여 대외적인 독립을 유지하려는, 지배 대상을 ‘신민’(subject)으로 파악하고 이를 일일이 통제하려는 ‘국가이성’ 이라는 전략이 등장했다.

하지만 국가이성은 곧 한계에 부딪혔다. 아무리 경찰력으로 통제하려 해도, 사람들이 권력은 어찌할 수 없는 고유한 욕망과 질서가 있는 양 행동했기 때문이다. 통치성은 국가이성과 달리 지배 대상을 고유한 질서를 가진 주민으로 파악하고, 그 자연성을 존중하고 활용하는 전략이다. 19세기에 들어 근대 국가가 완성되고 출현한 것은 이처럼 국가이성에서 통치성으로 전략의 전환이 이루어지면서였다. 근대 국가가 한편에서는 강압을 행사하지만 한편에서는 시민사회라는 자율적 영역을 보장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19세기에 등장한 근대 국가가 막대한 양의 공식 통계를 수집하는 ‘지식국가’의 성격을 띠는 것은, 통치성이 주민의 자연성을 제대로 파악할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가란 독립된 실체가 아니라, 전략이라는 특정한 맥락에 따라 나타나는 효과이다. 동일한 제도나 국가라도 그것을 작동시키는 전략에 따라 전혀 다른 기능을 가진다. 예를 들어 국가이성에 따른 경찰은 신민을 특정한 방향으로 키워내는 긍정적인 기능을 담당했다. 반면 통치성에 따른 경찰은 주민의 자연성을 해치는 요소를 제거하는 부정적인 기능을 담당한다. 이런 전략의 변화를 파악하지 못하면 오류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주권은 국가이성이라는 전략의 산물이다. 그런데 이런 주권의 시선을 가지고 통치성이 작동하는 근대 국가를 분석하면, 시민사회에서 주권의 쇠락을 목격하고, 그 시민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폭력에서는 주권의 건재함을 목격하는 혼돈을 피할 수 없다.

두 번째로 국가는 자본주의 생산관계로 환원되지 않는다. 통치성이 만들어내는 ‘주민’ 이라는 영역이 이를 잘 보여준다. 국가의 주민에 대한 관심은 경제적인 이해로 한정되지 않는다. 푸코의 생명 권력은 국가가 주민이라는 고유한 대상을 가지며, 그것의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해 애쓴다는 것을 주장한다. 그렇지 않다면 노인 정책 같은 비-경제적 이해에 따른 정책을 이해할 수 없다.

또한 자본주의는 전략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다. 자본주의 생산관계는 국가에 늘 동일하게 작동하는 초-역사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말이다. 예를 들어 권력의 전략이 통치성에서 신자유주의 통치성으로 전환하면서, 시장은 교환 보다는 경쟁을 보장하는 제도가 된다. 여전히 국가는 시장을 중시하고 그것에 근거하지만, 시장의 의미가 전혀 달라져버린 것이다. 즉 자본주의 메커니즘 역시 전략에 의해 변형되는 효과일 뿐, 국가를 초월적으로 규정하는 실체가 아니다.  

제솝(B. Jessop)이 주장하는 전략관계적 국가론 역시 국가를 전략관계의 결과로 본다. 하지만 제솝에게 전략은 주체가 자신의 이해를 극대화하기 위해 상황에 따라 선택하는 방법이다. 그렇기에 제솝의 전략과 그 전략의 주체는 특정한 이해의 틀을 이미 가지고 있다. 그 이해에 틀에 따라 최선의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틀은 다름 아닌 자본주의적 이해의 틀이다. 이런 전략관계에 의해 구성된 국가는 자본주의 내에서의 다양성을 설명할 수는 있지만, 근본적인 다양성을 설명하지 못한다.

반면 푸코의 전략은 주체를 구성하는 전략이다. 제솝이 말하는 주체는 푸코가 말하는 기업적 주체에 가깝다. 기업적 주체는 자신의 편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항상 고민하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기업적 주체는 신자유주의 통치성의 산물이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다. 푸코의 전략은 이처럼 이해의 틀을 가정하기보다, 이해의 틀을 만들어낸다. 푸코가 말하는 전략의 다양성은 동일한 목표를 추구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 자체가 다양할 수 있음을 지적하기 위함이다. 푸코의 전략은 제솝의 전략과 달리 절대적 우연성과 외부성을 지니며, 이는 국가의 성격과 변화를 훨씬 풍요롭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한다.

요컨대 푸코의 전략적 국가론은 국가가 제도 같은 실체가 아니라 전략의 결과물임을 주장한다. 일종의 비-실체적 국가론이다. 그 전략은 생산관계로 환원될 수 없는 권력의 다양한 작동방식을 의미한다. 주체가 가진 이해의 틀이나 가치 역시 이런 전략의 결과물이다. 다만 현실에서의 국가가 하나의 성격을 가지기보다 주도적 성격 하에 여러 성격을 가지듯이, 현실의 국가를 규정하는 전략도 복수로 존재한다. 그래서 엄밀히 말해 국가는 전략‘들’의 효과이다. 앞서 말한 특정한 전략들은 당대에 주도적인 전략들이었으며, 당시 국가가 주로 가졌던 성격을 규정한다. 국가를 다시 사고하는 것이 중요해지는 지금, 푸코의 전략적 국가론은 우리가 좀 더 섬세한 시선으로 국가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준다.

조원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