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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한국사회 장애인 운동의 역사에 관한 고찰 : 주체 형성과 변환을 중심으로-

2016년 10월 07일 10시 36분


초록

장애인은 근대 한국사회의 소위 ‘비정상인’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규정이다. 물론 우리는 과거에도 현재의 장애인에 해당하는 인물을 숱하게 발견할 수 있다. 예컨대 ‘폐질자’, ‘불구자’는 각각의 시대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비정상성을 담지했던 인물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하지만 현재 이와 같은 정의는 차별과 편견의 산물로 간주되어 마땅히 거부되어야 할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반면 장애인이라는 말은 객관적이고, 중립적이며, 정치적으로 올바른 규정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이 글은 이와 같은 관점을 비판하는 데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글은 장애인을 생물학적 본질이자 실체로서 간주하는 지배적인 가설을 비판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장애인을 통해서 근대권력이 정상성과 비정상성을 구획하는 방식을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애인의 역사는 비장애인의 차별과 편견에 맞서 장애인이 대항한 역사로 축소될 수 없다. 이 글에서 필자는 푸코에 기대어 근대 한국사회에서 작동하는 권력의 산물인 장애인 주체의 형성과 그 변환을 살핀다.

한국사회에서 장애인이라는 명명은, 근대사회로의 이행과 인구 및 노동력의 재생산에 대한 관심, 한국전쟁의 발발과 부상자의 발생, 소아마비 바이러스의 확산, 공적사회에 진입할 수 없게 된 ‘불구자’의 출현과 같은 사건들과 분리해서 사고할 수 없다. 이 모두는 ‘폐질자’에서 ‘불구자’로, ‘불구자’에서 ‘장애인’으로, 장애인 주체를 새로이 구성하도록 이끌었다. 따라서 ‘폐질자’에서 ‘장애인’에 이르는 역사는 차별적인 명칭에서 객관적인 명칭으로의 진보 혹은 발전이 아니라, 상이한 지식과 기술을 동반한 권력의 작동과 실천의 역사로 파악되어야 한다.  

1980년대에 들어서 처음으로 장애(인)라는 말이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장애(인)라는 말이 현재와 같은 지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까닭은 장애(인)가 통치에 있어서 장애인의 삶을 상대적으로 안정되고 일관되게 재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 담론이었기 때문이다. 장애(인)는 ‘불구자’와 달리 국가의 행정관료, 의료인, 사회복지 전문가, 장애인 개인으로 동시에 유통되고 분배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새로운 성격의 담론이었다.

하지만 이처럼 권력의 산물인 장애인은 단순히 권력이 작용하는 수동적인 대상에 머무르지 않았다. 1987년의 민주화와 뒤이은 한국 시민사회의 전반적인 변화와 더불어 장애인은 자신을 특정한 정체성을 공유하는 소수 집단으로 자각하기 시작했고, 독자적인 장애인 사회를 건설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는 지배적인 담론 속에서도 점차 인정을 받았다. 이와 같이 불구자 청원 운동에서 장애인 운동으로 이어지는 장애인 정치학은 계속되었고, 이는 나름의 방식으로 자신의 의의와 한계를 노출한다. 그리고 2000년 이후의 장애인 운동은 이러한 경향에 근본적으로 반하는 새로운 운동의 출현이라 평가될 수 있겠다. 왜냐하면 새로운 운동에 있어서 권리는 단순히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동권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한국사회의 장애인 운동사를 계보학적 방법을 통해 새로이 기술하고자 하였다. 이는 장애인의 생물학적 본질에 대한 가정을 역사적인 자료를 통해 검증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필자는 또한 이 글을 통해 현재의 장애인 운동이 권력의 좌표 위에 놓여있는 위치를 검토하고 정체성의 정치학 이후의 정치를 어떻게 모색해야 할지를 고민하고자 했다. 왜냐하면 필자는 장애인 운동은 장애인의 지위와 처지를 개선하거나 장애인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운동에 머무를 수 없으며, 궁극적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의 경계와 관계를 재생산하면서 양자 모두에게 작동하는 권력을 의문시하는 운동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