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07일 10시 36분
초록
이 논문은 2000년대 초반에 전개된 호주제 폐지운동 과정에서 부계혈통주의를 비판한 사회생물학 담론을 분석한 것이다. 호주제 폐지에 관한 다양한 논의들 가운데 특히 사회생물학 담론에 주목한 것은 사회생물학의 학문적 특성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사회생물학은 그동안 학계 내외로부터 생물학적 결정론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는데, 그 중에서도 페미니스트들은 사회생물학이 성차를 생물학적으로 정당화한다고 크게 반발해 왔다. 사회생물학에 대한 페미니스트들의 이와 같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대표적 여성운동인 호주제 폐지운동에서 사회생물학이 여성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담론을 구성한 것은 모순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본 논문은 다윈주의 페미니스트의 등장 등으로 인해 사회생물학과 페미니즘이 상호 소통 가능하다고 보고, 호주제의 부계혈통주의에 대한 비판으로서 사회생물학 담론을 적극적으로 평가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본 논문에서는 호주제 폐지론의 핵심을 이루는 부계혈통주의에 관한 논의들을 살펴보고, 이들 논의의 지형 속에서 호주제 문제에 관한 사회생물학 담론의 특색을 파악해내는 것을 구체적 목표로 삼았다.
사회생물학 담론은 기존의 호주제 폐지론자들의 주장과 이질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호주제 폐지론, 특히 부계혈통주의에 관한 논의가 이원적으로 구성됨에 따라 사회생물학이 호주제 논의에 등장할 수 있었다. 호주제 폐지 논의를 분석해 보면 호주제 폐지에 대한 입장에 관계 없이 호주제의 부계혈통주의를 바라보는 입장은 크게 문화주의적 관점과 생물학주의적 관점으로 나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기존의 호주제 폐지 논의 가운데 유전학적 측면에서 부계혈통주의의 타당성을 입증하거나 혹은 반박하려는 시도가 있었기 때문에 자연의 성생물학을 과학적으로 규명하겠다고 자처한 사회생물학 담론은 호주제 폐지 논의 내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었다. 다른 주장들과 달리 자연과학의 권위에 입각해 있는 사회생물학 담론은 부계혈통주의에 바탕을 둔 호주제를 폐지해야한다는 호주제 폐지론자들의 주장에 객관적 근거를 제공할 수 있다는 이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부계혈통주의에 관한 사회생물학 담론은 인간 사회제도를 설명하는데 사회생물학을 직접 적용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무리를 크게 고려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생물학적 결정론이라는 위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측면도 갖고 있다.
이와 같은 사회생물학 담론이 호주제 폐지논의 내부에서 어떤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가를 판단하는 것은 이 논문의 목적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다만 호주제 폐지운동 사례에 나타난 사회생물학 담론은 여성 문제 해결을 위한 이론적 자원을 사회생물학 내부에서 발견할 수도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그동안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져 온 페미니즘과 진화생물학의 소통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계기로 평가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