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07일 10시 24분
초록
1997년 IMF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한국 노사관계의 성격은 커다란 변화를 겪고 있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을 계기로 증진되었던 노동자들의 힘은 약화되고 있으며, 많은 성과물들 역시 사라져 가고 있다. 경제위기 이후 기업들의 구조조정은 노동자들의 수량적 유연성을 높이는 한편 기업이 원하는 대로 작업현장을 재편하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이로 인해 노동조건의 악화와 노동운동의 약화라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본 논문은 왜 현재와 같은 현상이 벌어지게 되었는가, 즉 1997년 경제위기 이후 진행되어온 기업의 구조조정이 한국의 노동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라는 문제의식으로 출발하였다. 이를 위해 본 논문에서는 특히 노동자들의 일상적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공간인 작업장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변화는 노동자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가고 있는지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이처럼 구조조정의 영향을 작업장을 중심으로 살펴보는 것은 뷰러웨이의 문제의식과 기본적으로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뷰러웨이는 노동과정이 노동자들에게 미치는 정치적·이데올로기적 효과에 관심을 가졌으며, 특히 그 중에서도 동의 형성의 메커니즘을 주목한 바 있다.
본 논문은 작업장 체제에서 어떠한 생산의 정치가 벌어지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한국에서 대표적 기업 중의 하나인 현대자동차를 사례조사하였다. 사례기업인 현대자동차는 현재 매우 좋은 기업 실적을 나타내면서 빠른 속도로 세계 5위권의 자동차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업에 속한 노동자들은 흔히 예상되는 모습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기업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은 고용불안, 장시간 노동, 높은 노동강도, 비정규직의 증가, 노동조합의 약화라는 현상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본 논문의 목적은 현대자동차에서 이러한 모습이 발생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밝히는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원인을 ‘고용게임’이라는 작업장체제의 특성으로 개념화하고 있다. ‘고용을 둘러싼 생산의 정치’를 의미하는 고용게임은 구조조정 이후 현대자동차 작업장에서 형성된 일련의 규칙과 이데올로기들, 그리고 그에 따른 효과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고용게임이라는 개념을 통해 현대자동차에서의 행위자들이 놓여있는 구조적 조건들과 그 조건들이 각 행위자들에게 의미하는 것을 분석하고자 하였다.
현대자동차에서 고용게임은 정리해고로부터 시작되어 완전고용합의서 체결로 이어지는 일련의 구조조정의 결과로 형성되었다. 정리해고로부터 야기된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은 이러한 고용게임의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고용게임이 형성된 결과 현대자동차에서는 현재 고용의 유연화와 임금의 유연화 그리고 노동시간의 유연화가 관철되고 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이러한 결과에 대해 노동자들이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동의를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노동자들은 ‘고용의 유연성’과 ‘물량에 의한 결정’이라는 게임의 규칙을 따르게 되고, 고용을 위해서 노동조건에 대한 양보와 비정규직 투입에 대한 양보를 거듭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에 대해 별다른 불만을 제기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노동자들의 변화 그리고 이러한 현상을 강화시키려는 기업의 전략에 대해 활동가들의 대응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고용불안의 내면화, 비정규직 문제의 고착화, 구조조정의 일상적 관철이라는 현상이 별다른 저항을 받지 않은 채 반복되면서 고용게임의 질서는 더욱 공고화되고 있다.
물론 고용게임은 노동자와 기업의 이해관계가 조정되어서 만들어진 생산의 정치의 산물이다. 현대자동차의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권익을 보장받기 위해서 고용게임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고용게임은 노동자들에게 한계점을 뚜렷이 가지고 있다. 고용게임이 지니고 있는 구조적 한계 속에서, 노동자들의 행위와 선택은 제한적이며 노동조건 개선과 노동운동 강화라는 목표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못하게 된다.
또한 현재의 고용게임은 노사간의 신뢰에 바탕한 것이 아니라 불신에 바탕한 것으로, 노사 양쪽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작업장 체제라고 볼 수도 없다.
따라서 발전적인 노사관계를 위해서는, 현재 작업장 체제가 어떤 구조적 한계들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들이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본 논문의 접근이 이러한 논의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