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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자랑스럽게 부적응하기': 간디고등학교에서의 진정성의 수행과 이중구속

2020년 08월 24일 10시 32분


 본 연구는 ‘산청 간디고등학교’(이하 ‘간디고등학교’)의 사례를 중심으로, 사회 전반과 제도권 교육에 대한 실천적 대항과 비판적 성찰의 역할을 자임해온 ‘대안학교’가 어떠한 내적 작동의 논리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대항의 대상으로 설정하는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어떠한 삶의 논리를 조형해내는가를 이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1997년 경상남도 산청군에 설립되어 2020년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는 간디고등학교는 1990년대 말 한국 사회 전반과 제도권 교육 체제에 대한 대항적 사회운동의 성격을 띠었던 ‘대안교육’이 본격적으로 대두된 이래 가장 먼저 설립된 대안학교 중 하나이며, 현재까지도 가장 대표적인 학교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대안학교는 한국 사회의 특정한 지점에 문제를 제기하는 담론이 생산되고, 이러한 담론이 물적 제도와 교육적 기획 속에 실물화되어 작동하며, 이를 통해 교육적 실천이라는 수행적 행위에 참여하는 구성원들의 정체성과 집합심리가 형성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흥미로운 사회학적 연구의 현장을 제공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입각해서, 본 연구는 대안학교로서 간디고등학교가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내는 독특한 삶의 논리를 포착하고 분석하는 것을 연구의 과제로 삼는다.

이에 따라 본 연구는 간디고등학교에 대한 민족지적 현장 연구를 수행했다. 본 연구는 간디고등학교에서 일어나는 주체성의 형성이 ‘일반 교육’을 포함한 사회 전반과의 담론적 대항 관계 속에서 규정되는 ‘진정성’의 의미론에 기반한 연행적 상호작용의 양상을 띠며, 이러한 과정이 베이트슨(Gregory Bateson) 등이 제출한 ‘이중구속’에 해당하는 상황을 학생들에게 부과한다는 점에 주목하여 탐구를 진행한다. 다시 말해, 간디고등학교의 학생들은 진정성의 의미론을 중심으로 하는 학교의 다양한 실천들에 참여하면서 학교 바깥의 ‘진정하지 않은’ 세계와 대비되며 그에 대항하는 존재로서의 정체성을 자임하게 되지만, 동시에 자신들이 대항해야할 대상으로 설정한 학교 바깥의 세계에 적응하고 편입해야한다는 상충하는 요구 아래에 놓인다. 이러한 간디고등학교 학생들의 경험과 실천을 분석하기 위해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일련의 질문들을 제기하고 그에 답하고자 한다. 첫째, 간디고등학교의 교육적 실천과 학생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진정성의 의미론은 어떠한 담론적 대항 관계 속에서 정의되고, 그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이며, 학생들에 의해 어떠한 방식으로 연행되면서 이들의 행위적 환경을 구축하는가? 둘째, 진정성을 핵심적인 의미론으로 하는 실천들은 실제의 사회적 국면에서 간디고등학교의 학생들에게 어떻게 경험되며, 학생들이 그러한 실천들에 참여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구축해나가는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셋째, 이러한 과정에서 담론적 대항의 대상인 ‘진정하지 않은’ 사회와 불화하는 존재로서의 정체성을 자임하게 되지만 다시 그 불화의 대상에 편입되어야하는 과제를 마주하는 간디고등학교의 학생들이 놓여있는 독특한 상황은 무엇이며, 그러한 상황 속에서 이들이 생산해내는 세계에 대한 상상과 정체성의 논리, 그리고 삶의 기획은 무엇인가?
먼저, II장에서는 간디고등학교에서 작동하고 있는 진정성의 의미론을 세 가지의 의미차원에서 포착하고, 교육적 실천들과 일상생활의 의례화된 방식들 속에서 이러한 의미론이 어떻게 구현되어 있는지 분석한다. 본 연구가 분석하는 바, 간디고등학교에서의 교육적 실천들과 학생들의 일상생활에서 ‘진정한 교육’, ‘진정한 개인’, ‘진정한 공동체’에 대한 추구가 작동하고 있으며, 이들 각각은 ‘진정하지 않은’ 학교 바깥의 대상들과의 긴장과 대립 관계 속에서 그 구체적인 내용이 정의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들 각각의 ‘진정한 것’들에 대한 상상을 중심으로 구조화되어 있는 실천들은 학생들이 진정성의 의미론을 수행적으로 경험하는 행위적 환경을 제공하고 있으며, 학생들은 이러한 실천들에 참여하고 자신들의 경험을 진정성의 의미론을 바탕으로 해석함으로써 각각의 의미차원들을 실감하고 소통한다. 이러한 진정성의 의미론은 분석적 관점에서 별도의 의미차원을 이루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으나, 일련의 실천들 속에 교차하면서 학생들의 생활이 이루어지는 담론적 자장과 사회적 세계를 구성하고 있으며, 간디고등학교의 가장 핵심적인 의례들 중 하나인 ‘식구총회’의 의례를 통해 압축적으로 재현되며 반복적으로 의례화된다.
한 가지 중요한 점은 학생들이 이러한 행위적 환경에 단순히 수동적인 참여자로서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상황을 해석하고, 주어진 행위공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경합에 참여하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구성해나가는 동시에 자신이 참여하는 행위공간 자체를 구현해내는 존재로서 참여한다는 점이다. 이처럼 학생들의 행위성에 주목하는 관점에서 바라볼 때, 간디고등학교는 공동의 실천에 참여하는 행위자로서의 구성원들이 그 과정에서 공동체의 목표와 규범들을 학습하는 ‘실천공동체’로서의 속성을 가지며, 학생들의 생활은 이러한 실천들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이들이 겪는 일상적인 경험과 상황적 맥락을 통해 이루어지는 ‘상황학습’의 양상을 띤다. III장에서는 이러한 관점에서 간디고등학교의 학생들이 진정성을 핵심적인 의미론으로 하는 실천들에 참여하는 과정을 중요한 국면들을 중심으로 분석한다. 학생들은 진정성의 의미론을 중심으로 한 실천들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참여에 필요한 일련의 기술들을 습득하고, 실천에 참여하는 구성원들의 관계망과 공유된 가치 체계 속에 자신을 배치하며, 집합적인 실천의 방식과 이를 수행하는 집단으로서의 공동체를 지속적으로 구현해낸다. 이처럼 집합적인 실천과 학습, 공동체, 그리고 개별 구성원의 정체성의 형성이 상호연결되는 복합적인 과정 속에서, 간디고등학교의 학생들은 공동체의 일원이자 진정성의 의미론을 체화한 ‘간디사람’이 되어간다.
마지막으로, IV장에서는 이러한 ‘간디사람’들이 경험하는 독특한 상황과 그러한 상황이 유발하는 실존적 긴장, 그리고 그에 대해 이들이 대응하는 방식에 주목한다. 진정성을 기준으로 하는 대비 속에서 학교에서의 경험과 스스로를 설명해내면서, 간디고등학교의 학생들은 학교 바깥과의 특정한 관계성에 대한 논리에 자신을 연루시킴으로써 학교 바깥과 대비되는 존재로 자신을 배치한다. 그러나, 간디고등학교의 학생들에게 ‘진정하지 않은’ 세계로 표상되는 학교 바깥은 단순히 대항과 대비의 대상이 아니라 졸업과 함께 자신이 마주하게 될 현실적 생활의 공간이자 삶을 기획해나갈 의미의 장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학생들에게 독특한 궁지의 상황을 발생시킨다. 학생들은 학교 바깥의 특정한 대상들을 ‘진정하지 않은’ 것으로 설정하고 그에 대항하라는 진정성의 요구와, 그 요구를 따르면 따를수록 학교 바깥의 세계에 대한 적응이라는 실제적인 과제 앞에 무력할 것이라는 ‘진정하지 않은’ 요구의 압박 사이의 이중구속적 상황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며, 이러한 상황 속에서 실존적인 긴장을 경험한다. 그러나 간디고등학교의 학생들은 동시에 이러한 상황에 나름의 방식으로 응전하는 양상을 보인다. 학생들은 자신들이 경험하는 세계가 이중구속적인 요구들로 이루어져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세계를 상상하고, 그 위에서 상충하는 요구들이 만들어내는 도덕적 딜레마의 상황으로 자신의 삶을 이해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자신의 삶을 기획하고, 해석하고, 실현시켜나갈 수 있는 새로운 행위공간을 창안한다. 이를 통해 간디고등학교의 학생들은 이중구속이라는 행위불가능성의 상황을 자신의 자리로 수용함으로써 그 위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삶을 기획하는 독특한 주체성의 논리를 구축한다.
이러한 간디고등학교 학생들의 경험과 이들이 구축해내는 삶의 논리는 그 자체로 한국 사회를 추동해온 일련의 집합적 기획으로서의 대안교육이 어떠한 것을 ‘진정한 것’으로 꿈꾸었으며, 어떠한 것에 대항해서 ‘진정한 것’을 실현하고자 했는지를 투영하고 있다. 대안이라는 실천적 작업은 사회문화적 진공 상태에 있지 않으며, 이에 참여하는 사회적 행위자들은 언제나 자신의 문화심리적 자원과 역사적, 생애사적 경험과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훼손되었으며 회복되어야할 진정성의 내용을 상상하고 기획하며 구현해내고자 분투한다. 이러한 점에서, 간디고등학교와 그 학생들이 구축해내는 삶의 논리에 대한 연구는 한국의 대안교육과 그 동력으로서 작동해온 진정성이라는 한국 사회의 집합적인 꿈의 내용과 궤적에 대한 연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