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4월 29일 02시 59분
비임금노동의 대규모적인 증가는 개혁개방 이후 제도적으로 불확실한 중국에서 어떻게 가능해질 수 있었을까? 비임금노동 내부의 다양성은 이른바 사회주의시장 경제 체제에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 본 연구는 중국의 특수한 제도적 환경에서 개인들의 직업전환 궤적과 결과를 추적함으로써 비임금노동으로의 상이한 전환과정에서 어떤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는지를 분석하였다. 특히 동구권 나라 혹은 러시아에서 비임금노동은 정치적 엘리트의 적극적인 역할과 일련의 하향적 개혁에 의해 확산되는 반면에 중국의 점진적 발전패턴에서는 사회적 관계들에 의존한 비공식 규범이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비임금노동으로의 전환에 있어 본 연구는 개인이 갖고 있는 인적 자본과 당원신분뿐만 아니라 개인이 맺고 있는 사회적인 관계, 즉 꽌시(關系)의 효과를 특히 주목하였다. 그리고 이를 통해 비임금노동의 증가와 내부 다양성이 개혁개방 이후의 중국에서 갖는 경제적•사회적 의미를 경험적으로 분석하였다.
이 연구는 ‘중국 노동력 동태 조사(China Labor-force Dynamics Survey)’자료를 사용하였다. 먼저 전반적인 비임금노동의 구성과 양상을 분석함으로써 비임금노동의 다양성을 확인하였다. 다음으로, 이직 경험이 없는 비임금노동과, 임금노동자로부터 전환한 비임금노동자를 구분한 뒤 비임금노동으로의 다양한 이동 결과(고용주, 비육체자영업자, 육체자영업자)에 각 요인, 특히 꽌시가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다항 로지스틱 회귀 분석을 하였다.
주요 분석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비임금노동자의 직업전환 궤적을 분석함으로써 절반에 가까운 비임금노동자는 임금노동자, 그것도 주로 육체임금노동자와 서비스업종사자에서 전환했음을 알 수 있었다.
둘째로, 비임금노동의 세부 유형에 대한 분석을 통해 내부의 이질성과 다양성은 확인되었다. 한편으로, 중국의 도시개발과 상업의 발전 덕에 상당한 수의 노동자가 도매업, 요식업, 그리고 건설 프로젝트를 통해서 성공적으로 고용주가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상당한 육체자영업자들은 임시적인 육체노동을 하기 때문에 임금육체노동자에 비해 더 불안정적인 직장환경과 사회복지 보장의 부재를 직면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학력이 높을수록, 당원일수록 비임금노동부문에 진입할 확률은 낮아지는 반면에 꽌시를 적극적으로 구축유지할수록 비임금노동부문에 진입할 확률은 높아진다. 또한 비임금노동부문에 진입하는 데 비교적 쉽지만 꽌시에 대한 적극적인 구축유지는 개인의 상향적 이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특히 비임금노동을 최초 직장으로 삼은 사람은 자주 식사초대를 할수록, 사업 중개자가 있고, 그 사람에 대한 신뢰도가 높을수록, 육체자영업자에 비해 비육체자영업자나 고용주가 될 확률이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높아졌다. 또한 임금노동자로부터 전환한 비임금노동자가 높은 교육수준과 발달한 관계망를 동시에 갖고 있는 경우 육체자영업자에 비해 비육체자영업자나 고용주가 될 가능성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높아졌다.
본 연구는 다양한 비임금노동에 진입하는 과정에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밝힘으로써 비임금노동은 엘리트와 일반 노동자 모두에게 대안적 통로를 안겨주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는 개혁 기간 동안 중국의 급속한 경제성장 속에서 경제적-사회적 갈등을 완충한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나아가 오늘날 북한에서 장마당이라고 불리는 시장이 날로 늘어나는데, 본 연구에서 분석한 밑으로부터의 중국 비임금노동 발전패턴은 사경제와 공경제 간의 갈등적이면서도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타개할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