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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한국 여성의 생애과정 재편과 혼인행동의 변화

2020년 04월 29일 02시 57분


한국은 이제 더 이상 보편혼 사회가 아니다. 지난 20년간 한국사회는 보편혼의 균열이 심화되는 과정을 관습과 규범으로부터 벗어나는 개인(특히 여성)의 자유화로 볼 것인가, 아니면 자본-노동 관계에서 전반적인 노동의 후퇴와 관련된 현상으로 볼 것인가 사이에서 진동해왔다. 이 논문은 ‘사회적 젠더혁명 가설’을 통해, 이 현상을 여성의 생산활동과 재생산활동의 관계가 구조적으로 변화한 결과이자, 그러한 변화가 초래한 긴장의 심화가 보편혼의 균열을 설명한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설명은 왜 결혼하지 않는가라는 개인의 의사결정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왜 혼인행동이 쟁점으로 부상했는가’라는 질문에 관한 것이다. 사실, 비혼과 결혼지연으로 특징지어지는 이러한 인구현상은 한국에 국한된 현상이 아닌, 선진 산업국가에 널리 확산되어 있는 현상이며, 동시에 발생시점과 강도 면에서 개별 국가의 역사적 발전의 경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이 논문은 20세기 한국의 역사에서, 보편혼은 어떻게 가능했으며, 어떤 조건으로 인해 침식되고 있는가를 밝히고자 했다. 이를 위해 우선 1921-85년 사이에 태어난 5세 간격 남녀 출생코호트의 결혼이행패턴을 규명하고, 연속된 출생코호트 사이의 비교를 통해 두드러진 변화가 이루어진 시대와 출생코호트를 특정화하였다. 그리고 이에 기초하여 결혼이행패턴을 보편혼의 지속 및 강화와 그것의 침식이라는 사회적 과정을 통해 설명하였다.
2장에서는 연속된 출생코호트 사이의 비교를 통해, 개인들의 초혼연령은 거시적 사회변동의 흐름에 따라 변화해왔다는 것을 확인한다. 초혼연령의 역사적 변화는 산업화 이전의 결혼, 산업화 시기의 결혼, 그리고 산업화 이후의 결혼으로 구분될 수 있었다. 미성년혼인(조혼)이 많았던 산업화 이전 세대와 달리, 산업화 세대(1940년대, 1950년대, 1960년대 코호트)에서는 전반적으로 여성의 초혼연령이 상승하면서 미성년혼인이 거의 사라졌다. 그러나 동조화된 결혼이행패턴의 집단성이 유지되는 채로 보편혼은 유지되었다. 물론 산업화 세대 내에서도 후기로 갈수록 소수의 비혼인구가 늘어났으나, 이러한 사례는 예외로 취급되면서 적령기 규범과 더불어 ‘정상적’ 결혼이행패턴은 유지되었다. 이와 달리 1970년대 이후 출생코호트부터는 연령 동조성이 사실상 사라지고 생애비혼율이 급격하게 증가했다.
3장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결혼하는 혼인패턴과 규범을 의미하는 ‘보편혼’이 20세기 한국에서 어떻게 지속될 수 있었으며, 이후 어떠한 과정을 통해 침식되었는지를 다룬다. 20세기 초반까지 비보편혼 양상이 일반적이었다가 경제성장이 진행되고 다양한 제도들이 안착되기 시작한 전후(戰後)에서야 보편혼 체제로 이행했던 서유럽과는 달리,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에서는 이미 전통적으로 보편혼이 오랫동안 유지되어왔다. 특히 한국에서는 서구의 ‘전후의 풍요’는커녕 극심한 사회·경제적 혼란을 겪었던 20세기 중반까지도 보편혼이 지속되었다. 특히 1940년대와 1950년대 출생코호트의 결혼은 결혼율과 결혼연령, 결혼연령의 분포 면에서 매우 안정화되었다. 하지만 3장은 그러한 결혼패턴이 마치 산업화의 성공과 동일시되거나 서구적인 ‘생애과정의 제도화’와 같은 것으로 해석되는 것에 반대하면서, 오히려 보수적인 부계 직계가족주의와 여성에 대한 전사회적 통제가 초래한 결과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4장에서는 초기의 산업화는 특히 여성노동력에 대한 수요를 확대했고, 한국의 가족에게 추가적인 경제적 자원을 획득할 기회를 제공했다. 그 결과 대부분의 여성들이 미성년결혼(조혼)이나 성인기로의 진입과 동시에 결혼했던 과거와는 달리, 성인이면서도 결혼하지 않은 채로 남아있는 연령기로서 ‘미혼기’(‘Mihon-gi’)가 여성 생애과정에 등장하게 되었다. 1940년대 출생코호트부터 여성 생애과정에 ‘미혼기’라는 새로운 영토가 개척되었지만, 1950년대와 1960년대 출생코호트까지도 이러한 ‘미혼기’는 결혼을 준비하는 시기에 불과한 것으로 사회적으로 구성되었다. 저학력, 저임금, 저연령으로 생산활동을 개시한 여성들, 즉 한국산업화 과정의 전형적 여성노동자들의 혼인행동은 빨리 결혼하고 그럼으로써 빨리 노동시장에서 퇴장하는 것이었다. 중등교육의 보편화와 더불어, ‘성인 미혼기’는 여성의 생애과정 내 보편적 경험이 되었으나, 미혼기의 노동경험은 여성들로 하여금 결혼적령기에 집중적으로 결혼하는 혼인행동의 조건이 되었다.
5장은 1970년대 초반 출생코호트가 20대 중반이었던 1990년대 후반 경제위기 이후 보편혼이 침식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3장과 4장에서 다룬 바와 같이 1980년대부터 보편혼체제를 뒷받침했던 노동시장과 가족의 부계 직계가족주의적 실천은 점차 약화되고 있었다. 여성을 ‘보편혼 규범’으로 차별하는 것에 대한 정치적 도전과 법적 개혁이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미혼기의 확대는 개인의 욕구와 동기를 중요시하는 소비문화의 확산과 더불어 결혼에 대한 자유주의적 태도가 확산되는 데 영향을 미쳤다. 또한 중산층에서는 결혼을 계층적 지위 공고화의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결혼의 기준을 높이는 경쟁이 치열해졌다. 이러한 추세는 1990년대 후반의 경제위기를 경유하여 선택적으로 확산되어왔다. 특히 노인 부모세대가 1940년대 출생코호트, 즉 이농 산업화세대로 교체된 1990년대 후반 이후부터는 산업자본주의적 질서 외부의 문화나 자원을 재생산에 활용할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들게 되었다. 이에 따라 가족과 가족 사이에 공유하는 문화적으로 조율된 가족전략은 각 가족이 처한 조건에 따라 변화하기 시작했다. 중요한 것은 어느 부모세대도 자녀에게 결혼을 보편적 규범이라고 강요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변화는 여성의 전생애에 걸친 소득기여에 대한 요구가 그 어느 때보다 강해졌으며, 미혼기간이 연장되면서 직업이 여성의 생애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 매우 커지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경향은 여성들이 경제적 독립성을 확보했다거나 노동시장의 성평등이 향상된 데에 따른 것이 아니라, 미혼 여성의 생산적 노동에 대한 가족과 시장의 요구가 강화된 데에 따른 것이다. 1990년대 후반 경제위기를 경유하면서 가족은 더 이상 직계가족주의 전략을 고수할 수 없으며, 구성원들이 노동시장에서 확보한 지위와 임금에 의해 생활하는 상태로 전환되었다. 이러한 조건에서는 가족구성원 모두의 경제적 능력이 중요하지 성별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상의 주장은 지난 역사에 대한 해석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오늘의 ‘2차 인구변천’을 이해하는 기초가 될 수 있다. 현대 자본주의는 여성의 생산노동을 통합해나가면서 발전하였다. 그러나 생산노동과 재생산노동의 분리와 긴장을 가족과 여성 개개인의 문제로 외부화하는 수단도 동시에 발전시켜왔다. 20세기 한국사회의 보편혼 규범은 그것의 가장 낡은 판본이라 할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혼인의 문제가 터져 나온 것은 젠더혁명의 일부라는 점에서, 그동안의 사회 발전과 성숙의 결과이며, 그것의 지속불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