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4월 29일 02시 50분
본 논문은 한국 사회에서 병역의무의 보편화가 추구·실현되어온 과정에 대한 계 보학적 탐색이다. 1950년대 병력동원 과정에서 누적된 문제가 당사자들에 의해 제기 되는 1960년부터 군가산점제 폐지를 계기로 병역이행자들의 집단적 움직임이 재등 장하는 1999년까지를 논문의 분석 시기로 삼았다. 해당 시기 동안의 병역 관련 제도 와 담론을 분석하여 병역의무 보편화의 계기와 정당화 기제를 살펴보았다. 연구 결과 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한국 사회의 병역 보편화 과정은 병역 ‘대체’ 개념의 적용을 통해 중립적인 ‘인구’ 를 ‘병역/현역미필자’라는 병역이행의 대상으로 흡수하는 담론적 실천과 제도적 실행 속에서 이루어졌다. 1960년대 ‘미필/기피’의 사회적 구제 방안으로 병역을 ‘대체’하는 ‘근로’의 의무가 제시되었다. 그러나 병역 ‘대체’ 개념의 본격적인 제도화는 증대된 안보위기와 함께 이루어졌다. 1968년의 ‘1·21사건’을 계기로 박정희 정부는 ‘향토방 위’를 위한 방위소집복무를 병역의무의 일종으로 위치시켰다. 이때 현역병 궐원시 보 궐입영의 의무를 지니던 기존 ‘보충역’의 지위를 ‘병역/현역미필’로 개념화하고, 현역 을 ‘대체’하는 의무 이행을 새롭게 요구하였다. 1969년의 방위소집을 시작으로 치안 과 경제활동을 포괄하는 다양한 영역의 임무가 병역을 ‘대체’하는 의무로 제도화되었 다. 병역 ‘대체’ 개념의 제도화는 ‘발전’과 ‘안보’를 일치시키는 박정희 정부의 담론적 행위와 제도적 실천을 바탕으로 가능하였다. 또한 정부는 병무청을 창설하여 병력 동 원의 행정적 기초를 마련하고, ‘사회정의’ 확보 차원에서 병역회피자를 색출하는 작 업을 벌이며, 대상자 전체의 병역 이행을 강제하였다. 이처럼, 병역의무의 보편화 과 정은 군대에 가는 것을 국민의 당연한 의무로 여기게 하는 감시·규율의 작동과 함께 병역/현역 ‘미필’의 범주를 조절하면서, ‘병역’ 개념과 대상의 확대에 영향을 주는 생 명(관리)권력의 작동이 주요하였다. 탈냉전·민주화 시기 병역 ‘대체’ 개념의 지속과 함께 사회 구성원의 평등 요구가 - ii - 더해지면서 징병제 ‘강화’라는 ‘역설’이 발생하였다. 1990년대 병역 대상 인구의 감소 에도 불구하고 ‘현역’ 자원의 증가가 이루어졌다. 이는 군복무기간의 단축으로 인해 자연적으로 증대된 인원에 더하여, 기존의 방위소집제도가 폐지되면서 ‘보충역’에 편 입되던 인원을 ‘현역’으로 흡수한 결과다. 군사·안보활동과 관련된 현역복무 ‘대체’의 의무인 방위소집제도가 폐지되고, 공익·행정 목적의 공익근무요원제도가 신설되었다. 또한 산업·경제 부분의 대체복무제도 운영이 확대되었다. 이처럼 냉전시기 ‘자주국방’ 을 이유로 정당화되었던 병역 ‘대체’ 개념의 제도화라는 ‘유산’은 탈냉전·민주화 이후 에도 ‘대체’ 의무를 통해 ‘국가’에 기여해야 한다는 요구로 이어졌다. 한편, 세계적 탈 냉전과 사회 민주화의 진전으로 병역에서 제외·면제되었던 구성원의 평등 요구가 증 대되었다. 1988년 남녀고용평등법의 시행으로 대표적인 ‘병역예외자’인 ‘여성’을 노동 시장의 정규 구성원으로 ‘인정’하기 시작하였고, 1999년에는 병역이행자의 노동시장 진입을 우대하는 ‘군가산점제’가 폐지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변화는 노동시장과 군 복무의 연계를 통해 병역이행자의 사회적 우선권을 유지하도록 하는 기존 병력동원· 보상체제에 동요를 가져왔다. 병역제도를 운영하는 정부와 병역이행의 당사자들은 병 역 보편화의 추구를 가속화하면서 이러한 동요에 맞섰다. 우선, ‘평등’한 병역이행을 위해, 병역 대상자의 신체·학력·질병 등의 조건을 완화하고 대상자의 범주를 조정·확 대하였다. 동시에 현역을 대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현역중심주의’에 기초한 병역 보편화가 추진되었다. 이처럼, 탈냉전·민주화는 앞선 시기의 병역 ‘대체’ 관념을 지속 하면서, 징병제의 ‘강화’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본 연구는 한국 사회에서 병역의무의 보편화가 추구·실현되어온 과정을 역사·사회 학적으로 분석하였다. ‘젠더’는 병역의무 보편화의 동력이자 정당화의 기제로 작동하 였다. 또한 병역의무 보편화의 추구·실현은 병역제도를 운영하는 정부만이 아니라 병 역이행의 당사자들에 의한 요청이기도 하였다. 병역이행 주체의 주체화/종속화 과정 은 위계화/젠더화된 국민의 형성과 연동되어 있었다. 한편, 병역의무의 보편화 과정 은 한국전쟁과 냉전·분단체제의 규정력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탈냉전·민주화 이후 더 욱 가속화된 보편화의 추구는 냉전·분단의 속성과 함께 ‘민주화’란 무엇인가를 질문 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