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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조선후기 ‘양반지배네트워크’의 성격과 구조변동 - 상층양반의 친족연결망을 중심으로

2017년 04월 03일 09시 36분


본 연구는 조선후기 지배층인 상층양반 친족조직의 성격 및 그 변동을 사회지배와 의 관련 속에서 살펴본 것이다. 조선시대, 특히 조선후기에는 지배층 결집이 친족조 직을 중심으로 해서 일어나는 등 친족과 사회의 관련에 주목할 만한 점이 있기 때문 이다. 본 연구에서 친족이라는 용어를 통해 의도하는 것은 ‘혈연, 혼맥을 매개로 결집한 가까운 인간집단’이다. 기존에 조선후기 친족과 관련하여 중시되었던 것은 성관, 문 중, 가문 등 부계혈연집단이었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혼맥의 분석이 간과된 면이 있다. 본 연구에서는 부계혈연집단만이 아니라 그들 간의 혼맥도 분석에 포함시키려 고 하였다. 본 연구의 초점은 다음과 같다. 즉, 조선후기에 친족이 사회조직으로서 중시된 배 경으로서 친족이라는 조직 형태가 제공한 강점이 무엇인가, 그리고 사적인 특성도 가 지고 있는 친족 조직이 공적인 영역에서 역할을 하기 위해 어떤 전환의 매커니즘이 있었는가, 그리고 이와도 관련된 것이지만 이 같은 친족 조직이 이루어 내는 지배연 합의 결집형태상의 특징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문제에 있어 시간에 따른 변화에 대해서도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 본 연구는 지배층 중에서도 상층부를 이루는 상층양반을 분석대상으로 하여 그들의 친족조직을 분석하 였다. 먼저, 본 연구에서 사용하는 핵심범주인 부계혈연집단, 친족연결망 개념에 대해 규 정하고, 이들을 활용한 분석방법을 고안하여 소개하였다. 또, 이 개념들을 이용한 경 험분석에 자료원으로 활용할 『만성대동보』에 대해서도 소개하였다. 이를 통해, 상층 양반 친족 조직에 대한 양적 접근으로서 연구방법을 명확히 하였으며, 또한 조선후기 사회조직에 대한 본 연구의 인식을 제시하였다. 다음으로, 문과급제자 통계를 활용하여 부계혈연집단의 결집구조에 대해 살펴보았 다. 흔히 조선시대 정치엘리트(정치세력)에 관한 기존의 연구에서 권력집단(벌열집단) 의 기본 분석단위로 성관(姓貫)집단이 활용되고 있는데, 그 유효성에 대해 재검토 해 보았다. 그 결과 조선전기에 비해 조선후기에 문과급제자 배출 수에 있어 소수 성관 독점 현상이 뚜렷이 진행되고 있음이 관찰되었다. 이 점은 조선후기가 조선전기보다 는 지배층 연구에 있어 성관집단을 분석단위로 하는 것의 이점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 다. 그렇지만, 성관은 지배층 결집의 단위로 보기에는 너무 규모가 커서 집단으로서의 결속력이 생겨날 수 있는가 하는 점에 대해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또한 성관 별로 규모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모든 성관을 같은 범주로 보기도 어렵다. 예컨대, 문과 급제자 배출 수에서 압도적인 ‘명문’으로 존재한 일부 성관(전주이, 안동권, 파평윤 등)의 경우 다른 성관과 비교할 때, 사실 단일 집단이라기보다는 복합 집단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 이 점은 역사상 최초로 성관별 인구를 집계한 1985년 인 구총조사에서의 본관별 인구 항목을 통해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인구가 많은 성관과 그렇지 않은 성관 사이에 많게는 수십배의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부계혈연집 단은 성관이나 지파 단위가 아니라 더 세부적인 단위에서 결속력을 가지고 있었을 가 능성이 크다. 이것은 정치사회적 결속의 단위로서 친족 집단에 대해 새롭게 접근할 필요를 야기한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처음부터 고정된 범위를 갖는 친족집단(예컨 대, ‘동고조팔촌’, ‘당내(堂內)’ 같은)을 상정하기보다는, 먼저 특정 개인으로부터 출발 해서 그가 맺는 혈연, 혼맥 관계를 통해 친족 단위를 재구성해 가는 방식으로 분석을 진행하였다. 다음으로, 지배층인 상층양반의 친족관계와 중앙정치의 관계를 살펴보기 위해 조선 왕조의 정치권력을 담당한 중앙엘리트 양반의 전형적인 일부를 추출해서 그들 간에 개재한 유사-친족 관계의 작용을 측정해 보았다. (여기에 바로 위에서 말한 친족 단 위 재구성법을 적용하였다.) 여기서는 ‘친족연결망’ 개념과 그에 기반한 정량적인 분 석법을 활용하였다. 이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정량적 분석이 현실정합적 의미를 산출할 수 있는 적절한 자료원이 필요한데, 본 연구는 상층양반의 혈연, 혼맥 정보를 담고 있는 각 집안의 족보들을 활용함과 동시에, 그 상층양반 및 지배층의 구성을 균 형 있게 반영하는 것으로 상정한 종합보인 『만성대동보』를 활용하여 실험 자료를 구 성하였다. 또, 상층양반 집단을 적절한 규모로 실험적으로 구성하기 위해 친족적 관 련, 친족연결망 등의 개념을 고안하고 그것을 통해 조선후기 중앙엘리트 상층양반 집 단의 친족조직을 양적으로 분석하였다. ‘친족적 관련’이라는 것은 현실의 두 인물이 맺고 있는 혈연, 혼맥의 유사-친족적 관계를 거리관계로 표시한 것이다. 그리고 ‘친족연결망’이라는 것은 복수 인물들이 참 여하는 집단에서 인물들 간의 친족적 관련 하나하나를 모두 합친 그물망을 의미한다. 중앙엘리트양반들의 경우 서로 간에 예상보다 상당히 가까운 관계거리로 연결되어 있 음이 확인되었다. 정치적 반대파들도 친족적 관련에 의해 연결되어 있었다. 또한, 친 족연결망 분석에서 양적으로 도출된 결과는 대체로 기존의 벌열 연구의 성과를 지지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예컨대, 18세기에 비해 17세기에 인물들 간 거리관계가 더욱 가까웠다. 또한, 17~18세기로의 시계열적 변화에 따라 친족연결망의 특성이 양 극화, 경직화되어 가고 있었다. 이것은 이른 바, 세도정치라고 하는, 소수 벌열의 관 직 독점이라는 현상의 출현을 예비하는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17세기에 비해 18세 기에 지배엘리트 결합은 군집을 이루는데 있어서 혼맥보다는 상대적으로 혈연관계에 많이 의존하며, 그 군집은 대체로 파편적인 양상을 보였다. 이 점은 인간의 정치사회 적 결집에 있어 공공성이 확보되는 방식에 변화가 생겨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다음으로, 중앙엘리트 집단과도 연결되면서 지방에서 위세를 과시하고 있었던 상층 양반인 해남지방의 해남윤씨를 사례로 해서 이들의 친족관계를 분석하였다. 이것은 자료구조의 한계상 양적 분석은 시행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들 역시 앞 장에서 분 석한 중앙엘리트양반들과 친족적 관련을 맺고 있었고, 또 그것을 현실에서 적극 활용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에 이 점을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지방 양반은 지방에 고립, 폐쇄적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전국에 걸쳐 분포 하면서 친족 구성원들 사이에 물질적, 상징적, 상상적 연결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점 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조선후기로 갈수록 연결망의 성격 변화가 주목된다. 18세 기 이후 점차로 서울-지방 간 위상의 변화가 관찰된다. 이것을 해남윤씨 윤선도 가계 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면, 17세기 윤인미 항렬에서의 관직 및 혼맥과 18-9세기 항렬 에서의 관직, 혼맥을 비교할 때, 현저하게 혼맥의 위상이 낮아졌음을 알 수 있다. 해 남윤씨의 경우 18세기 후반 이후 문과급제자도 드물었고 관직진출자도 드물었다. 18 세기 말 문과에 급제한 22세 윤지눌이 정조대에 왕의 특지를 입어 관직에 임명될 뻔 하였으나, 주위 신료들의 적극적 만류로 결국 좌절된다. 이것은 단순히 그의 개인적 흠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왕실과 중앙엘리트양반을 정점으로 하는 전국적 인 친족연결망, (친족연결망은 좁은 단위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고 전국으로 확대될 수 있으므로) 즉 지배층 친족연결망에서 주변화 되어 간 것에 따른 귀결로 파악할 수 도 있다고 생각된다. 이상의 분석들을 통해서 조선후기 지배체제 논의에 있어 함의를 한 가지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즉, 양반이 사회를 지배한 지배력의 원천이 무엇이었는가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양반의 지배력을 그 지주(landlord
land owner)로서의 성격에 기인하는 것으로, 혹은 아시아적 국가의 대리자로서의 특성에 기인하는 것으로 다양하게 이해 해 왔다. 본 연구에서는 그와 더불어 전국적 자원을 네트워크를 통해 동원할 수 있는 가능성, 이것이 양반 지배력의 원천으로 기능하였다고 판단하였다. 서울(관직)은 연결 의 매개 위치에 있었다. 조선후기의 상층양반들은 서울(관직)이라는 지역(자원) 그 자 체를 중시하기도 했지만, 서울에서 맺을 수 있는 네트워크의 가능성을 추구한 것이기 도 했다고 생각된다. 본 연구에서는 이것을 ‘양반지배네트워크’ 라는 용어로 표현하기 로 하였다. 친족연결망은 이 ‘양반지배네트워크’의 가장 핵심적인 기반으로 기능하였 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