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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식민지기 재래시장에서 시장갈등과 사회적 관계의 변동

2016년 10월 10일 03시 27분


초록 

 

이 논문은 일본 제국주의 지배하 ‘식민지 조선’에서 재래 정기시장의 시장경제화 과정의 특징을 포착하고, 그 시장경제화 과정에서 재래시장을 무대로 활동하던 인간 집단들의 실천과 사회적 관계의 양상들을 이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식민지적 한계 안에서지만 시장경제화가 진전되고 있던 이 시기에, 지역의 농민경제에 기반한 전통적 재래시장은 오히려 양적으로 급성장하였다. 그와 더불어 1920년대를 거치면서 시장의 경제적 이해를 둘러싼 집합적 갈등 또한 현저하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 시장갈등은 식민지 근대적 조건 아래 진행된 재래시장의 성장과 일정하게 조응하던 사회적 관계의 특징적 양상들을 보여준다. 

식민지기 재래시장의 성장과 더불어 갈등의 구조적 조건들 또한 형성되었다. (1) 인구밀도의 증가와 소농경제의 온존, 농가경제의 자급자족도 하락 등에 따른 시장의존도의 증가, (2) 식민 당국의 지역 차별적 개발 정책에 따른 농촌 공업의 미성숙, (3) 교통체계의 변화에 따른 상권 변동, (4) 특산물시장의 미발달에 따른 지역내 시장간 분업체계의 미성숙, (5) 도시 및 식민지 본국 시장과의 수직적 교역의 증가 등이 그것이다. 이에 따라 재래시장의 1시장당 거래고는 192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 급증하였고, 농촌 지역의 자산계급들은 시장을 통한 경제적 기회의 실현에 높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들이 인접 지역간 경쟁적 시장갈등의 폭증을 낳은 사회경제적 조건이 되고 있었다. 

한편 식민당국의 재래시장 정책은 제도적 수준에서 시장갈등의 조건을 배태하고 있었다. 조선총독부는 1914년, 시장제도 개선의 명분 아래 원칙적으로 모든 재래시장을 공영화하였다. 하지만 식민 당국은 시장의 설립과 폐지, 이전 등에 관한 권한을 장악하였을 뿐, 시장의 운영은 여전히 시장 주민들에게 방임하였다. 시장의 소재와 운영의 권한이 상이한 주체에게 분배되어 있는 ‘공영 없는 공영제’는 인접 지역간 시장갈등의 발생을 용이하게 한 반면, 해결은 어렵게 하였다. 시장갈등에서 나타난 집합행동의 주된 양식이 ‘당국에 대한 청원’으로 나타나게 된 것 또한 이런 제도적 조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1920년대 이후 일본인 대상의 2호시장체제 성립에 따른 민족간 시장분절의 제도화와 민족상권(民族商權, 民族商圈) 담론의 대두, 상인계층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상승 또한 시장갈등의 제도적·사회적 조건을 형성하였다. 

시장갈등은 이와 같은 경제적, 제도적·사회적 조건들이 서로 맞물리면서 본격화되었다. 농촌지역 명시적 시장갈등에서 압도적인 유형은 시장의 신설, 이전을 둘러싼 인접 동리간의 갈등이었으며, 갈등의 강도는 경쟁하는 동리간의 공간적 거리가 멀수록 더 격렬해지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강도와 빈도 모두에서 수위를 차지했던 것은 인접 신동리간의 갈등이었다. 

농촌지역의 명시적 시장갈등을 주도했던 집단은, 지주, 상인, 농촌공업 경영자를 핵심으로 하는 지역사회의 유지 집단이었다. 이들은 스스로를 시민으로 지칭하였으며, 자신들을 지역 발전 또는 생계안전이라는 공적 의제의 대변자로 표상하였다. 인접 동리와의 시장갈등에서의 승패는 최종적으로 당국의 결정에 달려 있었으며, 그 결정을 좌우하는 변수는 해당 동리가 제공하는 자원의 크기였다. 따라서 경쟁하는 동리들 사이에서는 자원동원 경쟁이 격화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시민들 사이의 기부(및 勞力)의 상호교환 관행이 확립되었다. 

이런 물질적 상호원조의 실행에서 무임승차자 발생에 따른 문제는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이는 (1) 다자간 교환의 형식을 취함으로써 결속력과 통제력을 동시에 높일 수 있었다는 점, (2) 재래시장이 도로상의 노천시장임과 동시에 부락시장이기도 했으며, 따라서 대면적 관계에 기반한 강력한 규범적 통제가 작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물질적 상호원조는 도덕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