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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돌봄노동이 된 아동보행 : 산본 신도시 아파트 사례 연구-

2016년 10월 07일 11시 28분


한국의 저출산 상황은 이미 국가적 의제가 된지 오래다. 이는 개발국가(Developmental State) 한국이 성장만을 기조로 여타의 재생산 비용을 소홀히 하거나 가족에게 떠넘겨 온 결과로도 볼 수 있다. 본 연구는 근대화 과정 중 여타의 공공 복지, 특히 ‘공간 복지’ 투자에 소홀했던 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주거양식으로 자리잡은 아파트 단지에 나타난 옥외 공간의 변화를 중심으로, 보행환경과 아동 돌봄 노동의 문제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인구학에서는 수렵민족의 환경적 요인이 출산간격에 영향을 주어 전체 출산율에 영향을 미친다는 가설을 제기하고 있다. 아동이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지의 여부가 양육자에게는 돌봄 부담의 변수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에 아동의 가장 기초적인 독립적 활동을 가능케 하는 보행 환경은 돌봄 노동의 형태를 결정하는 변수라 할 수 있다. 이에 본 연구는 보행환경이 개선된 신규 아파트 단지와 그렇지 못한 구(舊) 아파트 단지를 비교 대상으로 선정, 각 단지 내 취학 전후 아동 양육자 12명을 심층 면접함으로써 보행환경의 차이에 따른 그들의 돌봄 노동 경험을 탐구하였다.
연구 결과, 우선 보행환경이 개선된 신규 아파트 단지에서는 구 단지에 비해 많은 어린이들이 공놀이, 자전거 타기 등의 동적인 야외 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또한 어린이의 안전과 관련, 교통사고 가능성이 현저히 줄어듦에 따라 신 단지의 양육자들은 양육 스트레스도 덜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과거 아파트 단지들이 ‘통행’ 목적의 옥외공간을 제공하였던 데 반해, 신 단지의 옥외공간에서는 녹지 등 휴식공간이 강화되어, 이에 따른 양육자들의 관리형 돌봄 노동의 스트레스도 경감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결국 이렇게 보행공간이 강화된 신 단지의 돌봄 노동 행태도 구 단지와 근본적인 차이를 보이지는 않는 한계를 보였는데, 아동의 독립 보행 연령이 지연되는 현상, 양육자가 옥외공간에서 아동의 뒤를 쫓는 1:1 관리형 돌봄 노동이 지속되는 현상, 양육자가 직접 혹은 간접으로 아동의 사회적 자본을 형성해주는 ‘신종 돌봄 노동’을 수행하는 현상이 그것이었다.
보행환경이 개선된 신 단지 내에서도 아동의 독립보행이 어려운 이유는 첫째, 아파트 단지가 ‘섬’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단지 내 보행환경은 양호하나 아동의 활동 반경이 단지 내로만 제한되지 않기에 교통사고 걱정이 완전히 덜어질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사회 전체의 보행환경 개선 없이는 일부 지역에 국한된 환경 위험 해소 노력에 한계가 있음을 볼 수 있다.
둘째는 위험은 양극화될 수 있어도 불안은 양극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관리형 돌봄 노동의 또 다른 원인은 아동 대상 범죄 등을 우려하는 양육자들의 불안심리인데, 이러한 불안은 매스미디어에 의해 사회 전체로 확대되는 특징이 있다. 즉 사회 양극화의 해소 및 범죄 가능성의 감소 없이 특정 지역의 불안만이 관리될 수는 없는 것이다.
셋째는 오늘날의 양육자들 자신의 성장경험으로부터 비롯된 환경인지 때문이다. 흔히 ‘개발시대’로 일컬어지는 급속한 산업화 시대에 성장한 오늘날의 양육자들 중, 근린주구 보행환경의 급속한 악화를 상대적으로 덜 경험한 지방 소도시, 농촌 출신자들은 아이들의 독립보행과 자유로운 사회적 활동을 당위적으로 받아들였으며, 그렇지 못한 현재 상황에 대해서는 개선 의지 혹은 공동체 지향성을 강하게 드러내었다. 그러나 보행환경이 급속히 악화된 대도시에서 성장한 양육자들은 커뮤니티에 대한 불안도가 높거나 지향성이 낮은 특징을 보였다. 즉 양육자들이 성장 과정에서 경험한 보행 환경과 경험이 한 세대의 시간을 건너 현재 이들의 근린주구에서의 환경 인지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이들의 현재 양육 태도와 돌봄 노동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었다.
정리한다면, 오늘날 일부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개선된 보행환경은 특정 지역 내 어린이들에게 보다 안전한 옥외 활동을 허락하고, 양육자의 양육 스트레스도 일부 경감시켜주는 효과를 지녔음이 본 연구를 통해 관찰되었다. 그러나, 전체 사회의 보행 안전도를 높이지 않는 한 아동의 근본적인 독립보행은 요원하며, 이 시대 양육자들의 돌봄 노동 부담도 근본적으로 경감될 수 없음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개발 시대를 거치며 진행된 우리 사회의 보행환경 악화, 커뮤니티 파괴가 현재의 환경 인지와 돌봄 노동 형태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이 확인됨으로써, 지난 시대의 과제를 극복하는 것이 현재의 저출산 문제 해결의 실마리이며, 이는 다시 미래의 돌봄 노동과 출산 행위에도 영향을 미칠 것임을 조심스레 짐작할 수 있었다.
최근 정부는 저출산 대책으로 ‘가족친화적 사회환경 만들기’라는 통합적 노력을 시도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오늘날 ‘자녀의 사회적 자본 만들기’와 같은 신종 돌봄 노동과 그에 따른 양육 스트레스를 초래한 보행환경부터 적극적으로 개선해나갈 필요가 있다. 본 연구에서 확인되었다시피 보행환경 개선 및 그로 인한 돌봄노동 부담 경감 노력은 일부 집단의 일부 근린환경 개선 노력만으로는 근본적 해결이 요원하다. ‘공간복지’에 대한 정부의 더욱 큰 관심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