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07일 11시 22분
모국수학 제도는 민단이 간부 양성을 목적으로 대한민국 정부에 요청해서 1962년 대통령령에 의해 시행되기 시작한 것으로서, 내용에 조금씩 변화를 겪으며 50년 이상 유지되어 왔다. 오늘날 모국수학은 재일동포 민족교육의 중요한 한 축을 구성하고 있으며, 그 형태가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고 규모 또한 확대되는 추세에 있다. 이렇듯, 모국수학 제도가 긴 역사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연구는 지금까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본 논문은 모국수학이 재일동포의 민족정체성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최소한 6개월 전에 모국수학을 위해 한국에 온 재일동포 3, 4세 22명을 눈덩이 표집을 통해 모집하였고, 이들을 대상으로 반구조화된 심층인터뷰를 실시하였다. 본 논문의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우선, 구술자들이 모국수학을 결정한 배경에는 뿌리 찾기, 유학, 이력 쌓기, 탈(脫)일본, 한류의 영향과 같은 다섯 가지 동기가 주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뿌리 찾기란 한국어나 한국 문화 및 역사에 대한 지식과 같은 민족적 소양을 키우고 한국 생활을 통해 자신의 기원 및 민족 정체성에 대해 보다 심도 있게 탐색하려는 것을 뜻한다. 이들은 한국어의 실질적인 효용보다는 한국어가 자신의 민족의 언어라는 측면에 더 주목하며, 모국수학을 통해 자신의 뿌리와 연관되어 있는 한국의 문화를 배울 수 있다는 점에 보다 의미를 두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 일부 구술자들은 ‘유학처’로서 한국을 택하여 모국수학을 하게 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들은 한국이 자신의 모국이라는 사실보다는,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생활비가 저렴하고 보다 쉽게 유학 갈 수 있다는 면에 더 주목했다. 셋째, 또 다른 구술자들은 모국수학을 통해 한국어를 익히고 국제 경험을 갖추어 장래에 취업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거나, 다른 분야로 전직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모국수학을 택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들은 한국어가 자신의 민족의 언어라는 측면보다는, 일본사회에서 한국어가 갖는 효용가치 및 ‘국제 경험’으로서의 모국수학에 좀 더 주목하는 경향을 보였다. 넷째, 일본을 떠나고 싶다는 ‘탈(脫)일본’과 관련된 욕구가 일부 구술자들에게 모국수학을 선택하는데 주요한 계기로 작용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일부 구술자들은 한류의 영향으로 인해 모국수학을 하게 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불과 10년 사이에 나타난 새로운 현상이다.
다음으로, 모국수학생들이 한국 생활 중 겪었던 경험들을 살펴보았다. 첫째, 일부 구술자들의 경우 한국 생활 초기에 본국의 한국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는 행동양식을 자신의 준거의 틀로 여기며 ‘한국인이 되기 위한 시도’를 하였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둘째, 대다수의 구술자들은 모국수학 중 본국의 한국인들과 교류하였고, 그 경험과 내용에 의해 민족정체성에 크고 작은 변화를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인터뷰를 했던 거의 모든 구술자들은 많은 한국인들이 재일동포에 대해 무지하거나 편견을 가진 것 같다고 말하였다. 이에 대한 구술자들의 반응은 보통 부정적이었으며, “실망”, “충격”, “분노”, “짜증”과 같은 단어들을 통해 표현되었다. 다음으로, 다수의 구술자들은 지금까지 만났던 많은 본국의 한국인들이 재일동포는 한국인이 아니라고 하는 인식을 직간접적으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태도는 많은 구술자들에게 상처를 주었는데, 이에 대한 대처방식 및 인상은 무척 다양한 것으로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많은 구술자들이 모국수학을 하며 재일동포들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는 한국인들을 만났던 경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경험들을 전체적으로 분석해 볼 때, 구술자들은 재일동포에게 우호적인 한국인들과의 만남을 통해 겪은 긍정적인 경험보다는 부정적인 경험에 의해 더 크게 영향 받았다. 이 부정적인 경험들은 ‘재일 정체성’의 강화로 연결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셋째, 구술자들은 한국에서 경계인으로서 생활하며, 자신의 소속이 한국인가, 일본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다양한 상황을 맞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넷째, 구술자들은 태어나고 자란 일본을 떠나 한국에서 생활하며 여러 가지 문화 차이를 경험했으며, 이에 대처하는 방식 또한 다양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마지막으로, 모국수학생들이 모국수학 과정 중 겪었던 민족정체성의 변화에 대해 살펴보았다. 모국수학의 동기와 목적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구술자들이 모국수학 과정이 자신의 민족정체성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쳤다고 구술하였다. 이들의 민족정체성의 변화는 한국적 민족정체성의 강화, 재일적 민족정체성의 강화, 일본적 민족정체성의 강화의 세 가지로 범주화 할 수 있었다. 이 범주들은 모국수학생들이 최종적으로 가지게 된 확고하고 유일한 민족정체성이라기 보다는 모국수학 중 겪었던 단편적인 변화의 단계를 나타내기도 하고, 동시에 두 가지 민족정체성이 모두 강화되는 경우도 존재했다. 연구 결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모국수학 중 한국적 민족정체성의 강화를 겪었다고 구술한 구술자는 오직 두 명에 불과했다. 이들은 ‘뿌리 찾기’를 위해 한국 행을 택하였고, 한국의 대학교에서 수학하였으며, 모국수학을 마친 후에도 한국에서 계속 살기를 강하게 희망한다는 공통점들을 가지고 있었다. 둘째, 거의 모든 구술자들은 모국수학 과정 중 재일로서의 민족정체성을 처음으로 가지게 되거나,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재일로서의 민족정체성이 강화되는 것을 경험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모국수학을 통해 자신이 재일동포라고 인식하게 되거나 인식의 강화를 겪은 구술자들 사이에서도 그 이유는 다양했고, 인식의 내용에 있어서도 조금씩 차이가 존재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재일적 민족정체성의 강화를 겪은 구술자들의 경험은 (1)‘나는 재일이다.’, (2)‘한국인은 아니다’, (3)‘부정적인 재일에서 긍정적인 재일로’, (4)‘정하지 않아도 괜찮다’로 분류할 수 있었다. (1)‘나는 재일이다.’유형은, 재일동포만이 가진 특질이나 재일동포만이 공감할 수 있는 측면들에 보다 주목하며, 자신을 한국인도 아니고 일본인도 아닌 ‘재일이다’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2)‘한국인은 아니다’유형은, 한국 생활을 통해 경험한 본국의 한국인들과 자신의 차이 및 이질성을 강조하며, 이 결과로 인해 재일적 민족정체성이 강화된 구술자들이다. (3)‘부정적인 재일에서 긍정적인 재일로’유형은, 일본에 있을 때부터 재일로서의 민족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모국수학을 통해 자신의 민족정체성을 보다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변화를 경험한 구술자들이다. 마지막으로, (4)‘정하지 않아도 괜찮다’유형은, 모국수학 전에는 자신의 민족정체성이나 자신이 속한 국가가 한국과 일본 중 어느 쪽인지를 정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모국수학을 통해 “정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깨닫고 경계인이자 월경(越境)인인 재일로서의 자신을 받아들이게 된 구술자들이다. 셋째, 인터뷰에 응해주었던 22명의 구술자들 중 모국수학을 하기 전 자신을 ‘일본인’으로 정체화했던 구술자는 단 한 명도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는데, 이들 중 일부는 모국수학을 하며 처음으로 자기 안에 있던 일본적인 요소를 발견하였고, 이는 일본적 민족정체성의 강화로 이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일본을 바라보는 시각에 변화가 생겼다는 구술자도 존재하였다. 하지만, 이들은 모국수학 후 자신을 오직 ‘일본인’으로만 정체화 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고, 재일적 민족정체성과 함께 일본적 민족정체성도 가지게 된 것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해, 모국수학은 대다수 구술자들에게 자신이 재일임을 ‘확인’ 및 ‘재확인’하는 과정으로 작용하였으며, 일부 구술자들에게는 자기 안에 있던 일본적인 요소를 ‘발견’하는 계기가 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이들의 민족정체성은 다양하게 분화되어 가고 있고, 복합적이며 중층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구술자들은 대체적으로 긍정적으로 느끼고 있었으며, 이는 자신감 및 자아정체감의 풍부화와 연결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