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07일 11시 14분
초록
본 논문은 한 사회의 균열을 반영하는 국내 정치가 경제적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자율적인 정책 형성 능력을 유지하는지 밝히고자 한다. 세계화의 논리는 국가공동체 및 민주주의의 논리와 갈등을 일으키고, 이러한 갈등은 국내의 다양한 경제·사회정책 영역의 투쟁으로 드러난다. 특히 국가의 물질적 기반과 직결되는 조세정책은 경제적 세계화의 영향력을 받는 동시에 국가의 재분배 정책 의지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지표이다. 본 연구는 경제적 세계화와 국내 정치의 경쟁적 관계에 대한 실마리를 찾고자 조세정책의 주요 세목인 법인세를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지난 30년 간 사회과학계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효과에 대해 수렴 가설과 다양성 가설로 대표되는 논쟁을 지속해왔다. 먼저 수렴 가설은 자본을 유치하기 위한 조세경쟁이 정부의 조세정책 능력을 구조적으로 제약하고 국내 정책 결정에 대한 주권을 약화시켜, 각 국의 정책을 하향 수렴(race to the bottom)시킨다고 주장한다. 반면 다양성 가설은 국내적 요인(정당정치, 노조 등)에 의해 세계화의 영향력이 매개되어 개별 국가가 세계화의 파괴적인 영향력을 막아낼 수 있다고 본다. 뿐만 아니라 다양성 가설은 국가 별, 레짐(regime) 별로 세계화 양상이 유의한 차이를 보인다는 점에 주목한다. 두 입장의 이론적인 대립과 비교할 때, 그간의 경험 연구들은 대부분 다양성 가설 혹은 정치 중심(Politics Matter)의 주장들을 뒷받침해왔다. 본 논문은 기존의 경험 연구가 지닌 한계를 극복하고 레짐 별 차이를 확인하기 위해, 1981년부터 2008년까지 선진 산업국가의 법인세 정책 변화를 패널교정표준오차(Panel-Corrected Standard Error) 회귀모델로 분석하였다.
분석 결과 첫째, 법정법인세율은 경제적 세계화 변수(금융자유화, 무역의존도)와 강한 부(-)의 관계를 보였다. 이 결과는 경제적 세계화가 진행될수록 조세경쟁이 심화되고 법정법인세율이 낮아진다는 점에서 수렴 가설을 지지하는 근거가 된다. 하지만 여전히 정당과 노조를 비롯한 국내 정치적 변수도 부분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국내 정치의 영향력이 무의미해졌다고 해석하기는 어렵다.
둘째, 개인소득세 최고세율과 법정 법인세율의 차이를 나타내는 세율 격차는 경제적 세계화 변수와 정(+)의 관계를 보였다. 즉 경제적 세계화가 진행될수록 세율 격차는 점점 더 커지고, 그에 따라 세입 증대 억제와 소득세의 누진성 약화와 같은 조세경쟁의 간접적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국내 정치 요소 중 정당 정치 변수의 영향력은 사라졌지만 노조의 영향력은 여전히 유효하였다.
셋째, Esping-Anderson이 제시한 복지국가 레짐 분류가 세계화에 대한 대응에서 어떤 차이점과 공통점을 보이는지 확인하기 위해 법정법인세율에 대한 레짐 별 분석을 시도하였다. 그 결과 경제적 세계화 변수는 레짐과 무관하게 부(-)의 관계를 나타내면서 효율성(수렴) 가설을 강하게 뒷받침하고, 국내 정치 변수는 부분적으로만 다양성 가설을 지지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세부적으로 경제적 세계화 변수는 사민주의 레짐의 법인세 정책에 가장 강한 영향력을 나타냈고, 정당 정치 변수는 자유주의 레짐에서, 노조 변수는 보수주의 레짐에서 유의하게 나타났다.
본 연구의 결과를 종합하면, OECD 국가들의 법인세 정책에는 조세경쟁으로 인한 ‘강한 수렴’과 국내 정치의 매개를 통한 ‘약한 다양성’ 경향이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즉, 자본의 영향력 증대와 정치의 퇴각으로 인한 정책 자율성의 축소는 세계 경쟁의 틀에 구속되어 있는 선진 산업 국가에서 보편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인 것이다. 또한 연구 결과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진행된 이래 정치사회학적 의미의 민주주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으며 동시에 민주주의의 왜소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