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1970년대까지 한국은 발전국가로 알려진 국가와 대자본(재벌) 간의 긴밀한 연합을 유지하여 고도성장을 이루어냈다. 노동배제와 더불어 국가가 엄청난 규모의 재정을 자본에 특혜형식으로 제공해준 정책금융이 발전국가의 성격을 규정했었다. 1970년대 말 이후 발전국가의 연합이 외채위기를 계기로 해체되고 곧바로 재정긴축을 중간목표로 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이 도입되면서 한국에서 국가재정은 거의 관심을 받지 못해왔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이 완전히 신자유주의를 수용했다고 생각되던 그 때부터 재정지출은 급속하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극심한 경제침체에 대응하는 단기적인 지출이라 여겼으나, 재정악화는 10년 동안 꾸준히 지속되었다.
현대국가에 있어서 모든 정책의 근간은 재정이다. 따라서 재정지출이 급속하게 변화했다는 것은 국가개입의 성격, 그리고 국가가 개입해야 하는 자본주의의 성격이 변화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재정의 급격한 긴축과(1980-1997년) 이후 급격한 팽창은(1998-2007년) 한국의 신자유주의가 결코 단속적이고 일관되게 진행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한국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사회학의 기존 연구들은 재정에 대해 무관심하다. 마치 발전국가의 해체와 함께 한국의 발전전략에서 재정은 더 이상 적극적인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재정지출에 관심을 기울이더라도 이를 발전국가의 정책금융의 연속으로 보고 신자유주의 발전전략이 여전히 발전국가적인 성격을 지닌다는 모순된 결론에 도달하고 있다. 외환위기 직후 복지지출의 급격한 팽창에 주목하는 경우에도 이를 신자유주의 발전전략으로 종합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
본 연구는 한국 자본주의에서 재정을 분석하기 위해 재정사회학의 관점을 도입하고, 이를 구체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신자유주의 정책은 화폐, 자본, 노동이라는 세 영역에 대한 나름의 일관된 논리를 지닌 국가개입의 한 형태이며, 이는 신자유주의 헤게모니 블록에 의해 적극적으로 도입?실행된다. 이 정책에 기초한 이상적인 발전전략은 ‘수출경쟁력’과 ‘금융자유화’이다.
그러나 이론으로만 존재하는 이상(ideal)으로서 신자유주의 정책은 항상 동일한 이상적인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신자유주의가 도입되는 한국의 자본주의는 백지가 아니라 발전국가의 유산에 의한 기존의 발전연합을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순이 발생하는 지점은 한국의 특수한 발전연합과 신자유주의 발전전략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이 발전전략을 지지하는 화폐, 자본, 노동에 대한 신자유주의 정책과 발전연합의 모순이다. 모순의 결과 신자유주의가 심화되는 1997년의 전환 이후 오히려 재정악화가 심화되게 된다. 즉 재정긴축을 지향하는 신자유주의가 한국에서 급속한 재정팽창을 심화시킬 수 있다.
결국 신자유주의가 전환하고 안착하는 과정에서 국가는 유례없이 막대한 규모의 국가부채를 떠안아야 했다. 더욱이 신흥국가는 국가부채가 빠르게 증가하면 그 규모와 관계없이 재정위기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 사회는 신자유주의의 이상을 쫓아가면서 자신의 발전연합을 유지시키기 위해 부담해야 할 비용과 위험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