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07일 10시 41분
기존의 위험과 재난연구는 주로 조직사회학 영역을 중심으로 이뤄져왔다. 구체적인 재난사례를 바탕으로 한 이 연구들은 주로 재난의 원인을 조직실패로 보고, 어떻게 관리, 대처할 것인지의 문제에 집중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재난의 피해자들이 재난 이후에 어떻게 반응하고 그것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한 관심을 보이지 않아왔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재난을 입은 공동체가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자원, 즉 복원력으로서의 대응능력에 관심을 갖는다. 그러한 대응능력 중에서도 본 연구는 사회자본을 기반으로 한 공동체의 연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같은 정도의 재난을 입은 지역이더라도 성원 간 연대가 잘 되는 곳에서는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곳보다 복원에 이르기 쉬울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자는 2007년 12월 발생한 허베이 스피리트 호 유류오염사고 이후 약 2년간 석포리(가칭)라고 하는 지역에서 나타난 주민들의 관계변화를 심층면접과 참여관찰, 설문조사 등을 통해 살펴보았다. 이곳은 공통적으로 어업에 종사하고 친척들이 모여살기 때문에 응집력있는 전통공동체의 모습을 기대하기 쉽다. 또한 재난 앞에서 함께 협동할 것을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 재난 이후 나타난 연대의 모습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오히려 약해지는 것이었다. 특히 중앙정부의 개입이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입장에서 간접적이고 소극적인 입장으로 변해감에 따라 어촌계를 중심으로 하는 공동체의 성원 간 연대는 점차 약화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특히, 그 과정에서 중앙정부가 가구 기반의 문제해결 방법을 지향함에 따라 연대의 기반인 평등성을 훼손하고, 이장으로 대표되는 마을 리더쉽의 정당성과 안정성을 뒤흔듦으로써 공동체 연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연대약화는 그나마 주어지는 가용한 자원들마저도 복원에 이용하지 못하고 오히려 갈등을 증대시키는 원인으로 기능하게 만들었다. 이렇듯 공동체의 연대가 중앙정부의 대응양식에 의해 강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오늘날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퍼트남을 비롯한 학자들의 입장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 하겠다.
석포리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현상은 그 지역의 역사적 맥락을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우선 지역의 연대유형은 성원간의 대를 잇는 긴 관계에도 불구하고 점차 일상적인 삶은 개별화되고 있으며 무조건적이고 포괄적인 관계는 약화되어 왔다. 이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기회의 평등을 기반으로 하는 어촌계의 멤버쉽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것이 훼손될 때 연대가 지속되기란 어렵다. 또한 본 논문에서 비교사례로 삼은 일본의 마노(Mano)지역이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아래로부터의 문제해결능력을 키워왔음에 비해 석포리의 주민들은 그러한 경험을 갖지 못했으며 무조건적인 문제해결주체로서의 국가의 모습만을 기대하고 있었다. 따라서 마노의 사례에서처럼 국가가 간접적인 지원자로만 남을 때 문제는 해결되기 어렵다.
따라서 공동체가 지닌 이러한 특성에 따라 복원모형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 연구자의 제안이다. 이에 석포리의 맥락에서는 정부가 문제해결에 있어 보다 직접적이고 중심적인 역할을 맡는 국가 중심의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정부는 관련된 충분한 정보를 주민들에게 제공하고,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지원들이 복원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조절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무엇보다도 주민들로 하여금 중앙정부가 자신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을 되찾게 만들어야 하고 이를 통해 정부와 주민간의 신뢰회복은 물론 공동체의 연대도 재강화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방식은 지나치게 국가의 역할만을 강조함에 따라 지역주민들이 수동적인 위치로 남아있게 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 과정에서 주민들이 참여해 함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시민단체와의 적극적인 협력도 장려하는 등 관계의 다원화를 이룰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장기적으로는 마노와 같이 자율적인 문제해결 능력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석포리는 하나의 특수한 사례이면서 동시에 오늘날 한국의 농어촌 사회가 지니고 있는 특성을 보여준다. 따라서 본 논문의 의의는 이러한 사례와 문제해결 방법을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공동체의 재난 상황 속에서 적용해볼 수 있을 것이라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일 사례 및 질적 연구가 지니는 한계와 단순한 인과모형은 그 안에 감춰져있는 또 다른 변수들을 보지 못하거나 과소평가했을 수 있다는 점에서 지속적인 보완을 필요로 하는 본 연구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