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07일 10시 23분
초록
학생출신노동자는 한국의 노동운동에 있어서 특히 1980년대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출신노동자에 대한 지금까지의 연구성과는 매우 미진하다. 학생출신노동자를 다루는 경우에도, 이들을 노동운동의 발전과정에서 과도기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진, 한 때의 유행정도로 다루는 경향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노동운동이 단선적으로 진보한다는 목적론적 전제를 하고 있기 때문에 운동 내부에 존재할 수 있는 갈등들을 은폐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또한 이는 노동운동 내에서 ‘학출’이라는 기표가 내포하고 있는 경멸적인 감정, 요컨대 반지성주의 혹은 반지식인 정서라는 것을 해명할 수 없다. 따라서 본 논문은 일차적으로 학생출신노동자의 역사를 재고함으로써 잊혀진 이들의 역사를 복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하지만 그에 그치지 않고 학생출신노동자의 역사를 통해 한국의 노동운동과 지식인의 관계에 대한 역사 또한 보여주고자 하였다. 학생출신노동자란 바로 지식인이 노동운동에 투신한 가장 적극적인 사례이기 때문이다.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1) 먼저, 학생출신노동자의 등장과 소멸이라는 역사적 과정에는 다양한 요인이 작용하였다. 80년대 초반의 역사적 상황, 이념적 배경,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의 객관적 조건은 노동운동중심주의라는 하나의 경향을 만들어내었다. 여기에 당시 대학생들의 개인적 결단이 또한 작용하면서 다수의 학생들이 노동운동을 위해 노동현장에 투신하였다. 그런데 한국의 80년대가 어째서 유난히 많은 학생출신노동자들을 만들어냈는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지식인 개인의 이데올로기적 반전이나 실존적 결단을 말하는 이론만으로는 부족하다. 따라서 우리는 1980년 한국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데, 당시 한국은 기존의 정치권력이 해체되고, 새로운 지배 권력이 아직 확고한 헤게모니를 점하지 못한 상태에서 가시적인 폭력이 존재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근거로, 학생운동권은 80년대의 대부분의 시기를 혁명이 임박한 시기로 규정하였다. 더불어 특히 학생운동이 전통적으로 첨예한 정치투쟁을 주도하고 있었던 한국적 상황의 특수성이 작용하였다. 이것이 80년대 한국의 지식인, 그 중에서도 특히 대학생이 대대적으로 노동운동에 투신했던 배경이었다.
2) 그런데 학생출신노동자들은 노동현장에 들어간 이후에는 노동자와 지식인 사이에서 정체성의 갈등을 느꼈다. 이는 명시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존재론적으로 노동자가 되어야 하면서도, 일반 노동자가 아닌, 계급의식을 가지고 그것을 실천하는 노동자여야 한다는 그들의 갈등을 통해 알 수 있다. 즉, 학생출신노동자들은 일반적인 노동자와 같아지도록 노력함으로써, ‘위장취업’에 성공해야 함과 동시에 노동자들과의 정서적ㆍ문화적 유대감을 가져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노동운동을 목적으로 노동현장에 들어간 지식인이라는 자신의 역할을 잊지 않았다. 노동자와 지식인 사이에서 동요하는 학생출신노동자들의 정체성 갈등이 봉합될 수 있었던 것은, ‘이상적 노동자’라는 특정한 노동자 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노동자상은 관념적ㆍ이념적으로 형성된 일괴암적인 노동자상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상상적 형태라고 볼 수 있지만, 또한 그것이 현실의 노동자와 전혀 동떨어져서 존재했던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상상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또한 이는 학생출신노동자들 스스로가 추구했던 노동자의 모습이었기 때문에, 이를 ‘이상적 노동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적 노동자’는 학생출신노동자들 스스로가 되고자 했던 지향점으로서의 역할을 하기도 하였고, 노동자와 지식인 사이에서 겪었던 그들의 정체성 갈등을, “난 (지식인이 아닌) 노동자이지만, 일반 노동자가 아닌 (사상을 갖춘) 노동자이다”라는 방식으로 봉합하는 기능을 하였다. 더불어 ‘이상적 노동자’는 학생출신노동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상상 속의 노동자와 현실의 노동자와의 괴리에서 오는 당혹감을, 극복 가능한 정도의 문제점으로만 인식하도록 만들었다. ‘이상적 노동자’는 학생출신노동자가 자신의 정체성 갈등, 그리고 이념과 현실의 괴리에서 오는 갈등을 봉합함으로써 ‘학생출신노동자’라는 정체성 자체를 유지하여 그 활동을 계속할 수 있게 해주었던, 하나의 마개처럼 작용하였다.
3) 그러나 ‘이상적 노동자’는 갈등을 해결했던 것이 아니라 봉합했던 것이었기 때문에, 갈등이 표면화되는 것은 언제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본 연구에서 밝힐 수 있었던 마지막 결론은, 바로 학생출신노동자의/에 대한 갈등이 결국 ‘지식인 부정’을 통해서 해결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두 가지 면에서 그러하다.
첫째, 노동운동 내에서 학생출신노동자를 둘러싼 갈등이 ‘지식인 부정’을 통해 드러났다는 것이다. 학생출신노동자들의 헌신적이고 적극적인 활동에도 불구하고 1986년경부터 이들의 활동은 외부적인 탄압과 내부적인 분열로 인해 잇따라 실패하였다. 이에 따라 학생출신노동자에 대한 비판이 가시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는 경제주의적 조합주의 운동을 경시했던 학생출신노동자들의 편향적 정치주의에 대한 비판이기도 했으며, 나아가 지식인의 관념성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였다. 특히 1985년에 학생운동 내에서 등장하여 노동운동으로까지 급격히 확산되었던 대중주의 노선은, 학생출신들의 ‘지식인성’에 대해 전면적인 비판을 가하였다. 이러한 비판을 통해, 노동운동 내에서 지식인은 부정적으로, 그리고 ‘불순하게’ 담론화되었다. 대중주의 노선은 이 노선을 따르던 학생출신노동자들 뿐 아니라 노동자-대중과 노동자출신 노동운동가들로부터 지지를 받으며 노동운동 내에서 헤게모니를 획득하였다. 더불어, 노동자-대중이 지식인에 대해 ‘한’을 가지고 있었고, ‘배운 자=지식인=학생출신’과는 구별되는 노동자 자신들만의 유대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역시 대중주의 노선 확산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또한 1987년의 ‘노동자 대투쟁’은 노동자들의 자발성을 증명하는 사건으로 인식되면서 ‘선진 노동자’를 형성하였고, 학생출신노동자들은 노동운동의 중심에서 주변부로 그 역할을 옮길 것을 요구받았다. 그러므로 노동운동은 정서적으로는 ‘지식인 부정’으로, 현실적으로는 ‘이상적 노동자’와 가까운 ‘선진 노동자’의 배출로, 노동운동 내에 존재하는 학생출신노동자를 둘러싼 갈등을 해결하였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지식인과 노동자 사이에서 동요하던 학생출신노동자들의 정체성 갈등 또한 ‘지식인 부정’으로 해결되었다. 우리는 현재까지 노동현장을 이탈하지 않은 학생출신노동자들은 더 이상 학생출신이라는 명칭이 어색할 정도로 한 명의 (선진-)노동자가 되어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 노동현장을 이탈하여 외부에서 노동운동을 지속하고 있는 ‘학출’들 역시, 노동운동 내의 지식인에 대한 비판과 부정적 정서를 어느 정도 수용하고 있었다. ‘학출’들의 ‘지식인 부정’은 여러 형태로 나타났다. 그 중에서도 사회적 지식인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적극적인 지식인 부정이라고 한다면, 노동현장과 노동자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거나 이들에게 강한 애착을 표현하는 것은 소극적인 지식인 부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의 지식인 부정에는 공통적으로 “나는 지식인이 아니다”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지식인에 대한 비판과 부정적인 담론을 회피할 수 있었던 일종의 전략으로서, 학생출신노동자들은 자신의 지식인 정체성을 거부하였다.
본 연구를 통해 학생출신노동자들이 노동운동을 지속하기 위해서, ‘지식인 부정’이라는 전략을 취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이는 한국의 노동운동이 반지성주의적 경향, 혹은 반지식인 정서를 지니고 있음을 방증(傍證)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지식인과 노동자-대중의 분리가, 사회구조의 본질을 파악하고 체제에 문제제기할 수 있는 노동자계급만의 능력을 제약할 수 있다는 점을 떠올려야 할 것이다. 한국의 노동운동은, 못 배우고 가난한 육체노동자라는 담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