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과소개교수진학부대학원게시판상백자료실
상백자료실

학위논문목록

학위논문목록

[2019] 실업과 현금지급의 사회정치: 서울시 청년수당을 중심으로

2020년 04월 29일 03시 05분


본 연구는 서울시 청년수당의 제도 변화를 중심으로, 노동가능인구인 청년에게 현금이 지급되기까지의 사회정치 과정을 분석한다. 1997년 금융위기 이후 한국에서 실업은 유달리 높은 실업률을 기록했던 청년이라는 세대 집단의 문제, 즉 청년실업이라는 만성적인 사회문제로 제기되어왔다. 미취업 청년들에게 6개월 동안 자율적인 “활동”을 위해 매달 50만원의 현금을 지급하는 서울시 청년수당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기한 제도와 담론이 경합해오던 맥락에서 제안된 정책이다. 이 정책은 스스로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했던 기존 정책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격렬한 정치적 갈등을 거쳐 제도화되었다.
본 연구는 이러한 갈등 속에서 청년수당이라는 ‘돈’을 저마다 각각 ‘선물’, ‘투자’, ‘권리’ 등으로 바라보았던 시각들의 경합에 주목한다. 청년수당(Youth Allowance)이라는 제도의 명칭에서 드러나듯이, 이 경합은 ‘청년’에 대해 도덕적으로 허락(allow)될 수 있는 증여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규정하는 규범이 재구성되는 정치의 과정이었다. 따라서 청년수당의 제도 변화 과정은 노동할 수 없는 노동가능인구에게 현금이 지급될 수 있었던 과정을 관찰할 수 있는 효과적인 장소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입각하여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답하고자 한다. 어떻게 노동가능인구로 여겨졌던 청년에게 청년수당이라는 이름의 현금이 증여될 수 있었는가? 이 물음은 다시 다음과 같은 물음들로 나누어질 수 있다. 첫째, 왜 청년이 노동가능인구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사회정책의 대상으로 논의되게 되었는가?(Ⅱ장) 둘째, 이 정책이 구상되는 과정에서 청년은 어떠한 존재로 인정받았으며, 이들에게 증여되는 돈의 의미는 무엇이었는가?(Ⅲ장) 셋째, 이 구상이 현실화되는 과정에서 청년에 대한 증여의 규범은 어떻게 변형되었는가?(Ⅳ장)
먼저 청년수당의 전사(前史)로서, 청년이라는 세대 범주가 현금을 지급하는 사회정책의 대상이 된 배경을 분석하였다. 양육의 대상인 유년과 노동의 주체인 성년 사이에 위치한 ‘청년’은 1997년 금융위기 이후 정부 실업대책에서 최초로 정책의 대상으로 등장하였다. 그 이후에도 개인의 도덕적 책임으로 여겨지던 청년실업은 청년세대에 대한 관심을 통해 집합적인 수준에서 해결되어야 할 문제로 구성되었다. 이후 청년실업의 사회정치는 청년세대의 담론적 구성을 둘러싼 문화정치를 수반하게 되었다. 정부는 청년실업이 미래에 극복될 수 있는 일시적인 위기라는 전제 하에, 도전, 열정, 기회와 같은 기존의 ‘청년’이 체현하고 있던 규범인 청년성(靑年性)을 복원하기 위해 취·창업 지원정책과 같은 고용 정책에 집중하였다. 다른 한편에서는 도래가 불확실해진 미래의 고용이 아니라, 현재의 사회재생산을 보장받을 권리를 요구하는 청년당사자운동이 전개되었다. 청년당사자운동이 시민운동가 출신 서울시장의 서울시정과 조우하게 되면서, 청년에 대한 ‘정책’과 ‘운동’의 흐름은 청년정책거버넌스로 제도화되었다.
서울시의 청년정책거버넌스 내부에서 논의된 청년수당이 구상되는 과정은 ‘청년’과 이들에게 할당질 수 있는 증여의 의미를 재구성하는 과정이었다. 이 과정을 청년수당의 본래 공식 명칭인 “청년활동지원사업”의 “청년(문제의 구성)”, “활동(개입의 지점)”, “지원(제도의 내용)”이라는 의미소 단위로 분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청년을 과도기적인 구직의 주체로만 간주했던 기존의 정책들이 효과적이지 못했다는 비판은 고용과 구직을 기준으로 한 NEET 대신,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 때문에 주변화된 이들을 포괄하는 “사회 밖 청년”이라는 새로운 정책 범주의 발명으로 귀결되었다. 여기서 ‘청년’의 시간성은 미래의 고용을 예비하는 일시적인 구직활동이 이루어지는 과도기가 아니라, 구직 기간 동안, 그리고 구직에 성공한 이후에도 문제가 발생하는 반영구적인 ‘현재’로 변형되었다. 둘째, 시간성이 변화한 ‘청년’을 대상으로 한 정책의 목표는 미래의 고용가능성을 제고하기 위한 인적자본(human capital)의 축적에서 현재의 다차원적인 역량(capability)인 “활력(活力)”을 보존하는 것으로 변화하였다. 기존의 고용정책이 지원했던 강제된 구직활동이나 불안정 노동과 구분되는 새로운 정책 범주인 “활동(活動)”은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책이 개인에게 지원하고자 하는 삶의 형태이다. 셋째, 청년수당이라는 ‘돈’은 활동에 대한 ‘지원금’으로 제안되었다. 정책관계자들은 이 돈의 의미를 ‘권리’로 구성하기 위해 서로 길항하는 ‘선물’과 ‘투자’의 논리를 도입하였다. 한편으로 이 돈은 개인에 의해 자율적으로 기획되는 활동을 지원하는 무조건적인 ‘선물’로 간주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이 돈은 수증자의 미래 변화를 ‘성과(return)’로 요구하는 조건부 ‘투자’로 규정됨으로써, 무조건적인 선물이 일방적인 ‘시혜’로 전락할 위험에서 자유로워졌다. 이 ‘투자’는 기존의 사회투자와 달리 투자의 기간(‘청년’이라는 시간)과 조건(개인에 의해 자율적으로 기획되는 ‘활동’)이 모호한 투자였다. 청년수당이라는 증여의 의미는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는 ‘청년’에게, 자율적으로 기획된 ‘활동’을 조건으로 지원하는 이 투자의 의미론이 이후 어떻게 구체화되느냐에 따라 변화할 수 있었다.
청년수당은 서울시 외부에서 공론화되자마자 격렬한 정치적 갈등을 겪으면서 변형되었다. 사업의 시행 여부를 결정할 권한을 가지고 있었던 정부는 청년수당을 지급하는 근거인 “활동”이라는 정책 범주를 이해하지 못했고, 이 정책을 무조건적인 현금 지급 정책으로 간주하였다. 공론장에서 노동의 능력과 의무를 담지한 주체로만 인정받았던 청년에게 주어지는 이 현금은 ‘부도덕한 자선’이라고 비난받았다. 이 ‘낙인’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울시는 “활동”의 의미를 광의의 구직활동으로 제시하였고, 청년수당을 미래의 ‘인적 자원’에 대한 ‘투자’로 정당화하며 정부와 사업 시행을 협의하였다. 그 결과 청년수당의 의미는 구직활동을 폭넓게 지원하는 ‘투자’로 고정될 수도 있었지만, 양자 간 “활동”의 의미를 둘러싸고 협의가 결렬되면서 청년수당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청년수당이라는 증여의 정당성을 좌우했던 “활동”이라는 정책 범주가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이 정책이 청년에게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현금이라는 ‘물고기’ 자체를 지급함으로써 그들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측면이 부각된 것이다. 그러나 이 ‘물고기’의 의미는 ‘물고기’가 상징하는 분배를 터부시했던 입장을 거스르는, 무조건적인 분배에 대한 권리가 아니었다. 이 권리를 담지하는 청년은 미래를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구직의 의지와 전망을 갖춘 피투자자(investee)로 표상되었고 이들에게 증여되는 청년수당이라는 ‘물고기’의 의미는 일시적인 ‘투자’로 구성되었다. 이로써 청년수당은 제도적 차원에서는 구직활동지원금으로, 이 돈이 내포하는 권리의 내용은 미래를 위해 ‘투자받을 권리’로 고정되었다. 이후 청년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정책은 이 규범에 의거하여 확산되고 이해되었다.
결론적으로 청년수당을 둘러싼 갈등은 ‘생산’의 주체로만 여겨졌던 청년에게 이전까지 금기시되었던 현금을 직접 ‘분배’하는 제도를 정당화하는 ‘투자받을 권리’라는 규범을 형성하였다. 이 규범은 노동가능인구에게 현금이 지급될 수 있었던 배경에 공존하는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반영하고 있다. 청년으로서 투자받을 권리는 한편으로 ‘고용’과 등치된 미래를 위한 개인화된 노력의 의무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청년’을 통해 징후적으로 드러났던 구조적 실업이라는 위기를 전치시킬 수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 실업이 만성화되면서 청년이라는 피투자자의 시간이 점차 연장되고 있는 오늘날, ‘투자’라는 규범은 단순히 권리를 제약하는데 그치지 않고 사회권이 재구성될 수 있는 정치적 지평을 구성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