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4월 29일 02시 55분
난민과 탈북민이 한국에서 살며 겪는 경험들과 한국사회가 난민과 탈북민을 대하며 만들어내는 사회적 사건들은 한국 사회의 민낯을 드러낸다. 난민과 탈북민의 경험이 기존의 한국 시민권과 인권에 어떤 균열을 내는지 그 현상들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2019년 현재 난민을 비롯한 강제이재민은 유엔난민기구의 70년간 집계 이래 최대 규모다. 선행연구들은 세계화, 이주의 증가, 인권레짐의 발달, 국민국가의 약화로, 난민이 어느 국가에 속하든, 난민이 존중받고 인간다운 삶을 살도록 사회가 제도화될 거라 내다봤다. 그러나 난민은 이주한 곳에서도 여전히 배제를 경험한다. 이글은 한국을 하나의 사례로 보고, 한국의 맥락 속에서 난민과 탈북민이 배제되는 원인을 탐구했다.
한국은 난민 연구에서 특수한 사례다. 난민과 탈북민은 본국을 탈출하여 난민상태(refugeehood)를 경험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그러나 난민은 한국으로 이주해도 시민으로부터 배제되어 난민상태를 경험하나, 탈북민은 한국에서 국내법상 국적을 가진 국민이기에 포섭된다. 하지만 탈북민은 한국 정착에 어려움을 경험하고, 다른 국가로 이주하기도 한다. 난민은 한국에서 배제를 경험하나 이에 대한 연구는 부족하다. 이글은 21세기의 난민을 강제이재민(forced displaced persons)으로 간주하여 난민과 탈북민을 함께 연구함으로써 난민개념의 구시대성 협소함을 넓히고자 했다.
이를 위해, 이글은 1990년부터 2018년까지 축적된 자료를 통해, 공동체의 내집단과 외집단 경계 형성을 시민권과 인권 관점으로 분석했다. 통합연구방법론을 통해, 한국인의 타자 의식과 난민과 탈북민 배제 양상을 양적 분석했다. 한국인과 타자의 법적 규정을 문헌조사방법으로 분석했고, 집회, 기자회견 참여관찰, 재판 방청 등 현장연구를 진행했으며, 난민(16명)과 탈북민(15명), 난민·탈북민 관련종사자(13명) 44명을 심층 면담하여 포섭과 배제 경험과 대응 기제를 분석했다.
연구의 차별점은 두 가지다. 첫째, 시민권의 다차원성 관점으로 포섭과 배제를 논한다. 선행연구의 한계를 보완하여, 시민권을 체계와 생활세계, 거시와 미시에서 발생하는 다차원적인 과정으로 보았다. 또 시민권의 하위영역들이 동질적으로 변할 수 있지만 국민적·탈국민적 요소들이 비대칭적으로 혼합되어 변한다고 가정하여, 비대칭성도 구조적 요인임을 분석했다. 둘째, 기존 인권 논의는 인권 침해의 사회구조 및 과정을 살펴봐야할 필요성을 제기해왔다. 이글은 갈퉁(Galtung, 1994)의 인권 개념과 조효제(2016)의 인권 달성의 근본조건 관점에서 인권을 사회 구조 및 과정의 연관성 속에서 살펴봤다. 공동체의 내집단·외집단 경계 형성과 시민권의 비대칭성, 내집단·외집단 행위자의 상호작용으로부터 기인하는 인권 침해의 구조를 분석했다.
이글은 공동체의 내집단과 외집단 경계 형성을 체계와 생활세계 차원으로 나누어 분석했다. 생활세계 차원에서 포섭과 배제는 규범적 영역과 정서적 영역이 있음을 논하고, 이를 “타자에 대한 규범적·정서적 포섭과 배제 역량”으로 개념화했다(2장). 국제 비교분석 결과, 한국 공동체의 내집단·외집단 경계는 위계적이고 견고했다. 한국은 타자에 대한 정서적·규범적 배제에 속하며, 한국인의 ‘소속감 위계(한국-한민족-아시아-세계시민 소속감)’이 ‘난민과 탈북민에 대한 정서적·규범적 배제’에 상관관계 및 인과관계가 있었다.
2018년 제주도 예멘 난민 사례를 도덕적 공황이론을 통해 분석하여 생활세계 미시 측면에서 한국인의 난민에 대한 배제가 구체적으로 구성되고 체계(헌법-법·정책) 변화로 요구되는 것을 살펴봤다. 한국사회는 사회의식 속에서 난민에 대한 규범적·정서적 배제가 깔려 있었고, 이 사례는 한국사회가 두려움과 불안의 확산을 통해 타자에 대한 극적인 배제로 치달을 수 있는 사회임을 보여줬다. 그러나 이 사례는 난민이 21세기 들어 이제야 한국 사회에 새로운 현상으로 등장하고, 난민에 대한 사회적 혹은 집단적 합의를 이루어가는 과정임을 드러낸다. 이 과정 중에 난민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드러났지만 이는 합의적 과정 중에 표출된 것이다. 이 사례는 세계주의적 차원에서 한국 사회와 국가가 시민권 규범의 철학적·정치적 변화를 모색해야 할 과제를 던져준다.
체계 차원에서는 한민족이라는 역사 상상적 가정이 내집단 경계를 선택적으로 넓히지만 외집단 배제를 강화하는 기능을 했다(3장). 시민권의 변화와 확장이 탈북민의 경우 신자유주의적 도구성을 중심으로, 난민의 경우 세계주의적 차원이긴 하나 선진사회라는 징표로서의 도구적 효용성을 중심으로 전개됐다.
이러한 공동체의 내집단·외집단 경계 형성이 원인으로 작용하여, 내집단의 외집단(난민과 탈북민) 배제라는 상황적 메커니즘을 형성하고, 이를 통해 외집단에 대한 인권침해를 가져왔다(4장). 난민은 생활세계와 체계에서 배제되었다. 난민이 속한 공동체의 경계는 양 차원에서 배제된다는 측면에서 대칭적이었다. 난민은 이주 이전과 과정 속에서 경험하던 인권의 상실을 한국에서도 겪어, ‘인권 상실의 지속 메커니즘’을 경험했다. 탈북민은 생활세계에서 배제되지만, 체계에서 포섭되었다. 따라서 탈북민이 속한 공동체의 경계는 비대칭적이었다. 탈북민은 ‘인권의 불완전한 회복 메커니즘’을 경험했다.
이 글은 난민과 탈북민이 포섭과 배제의 메커니즘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분석하였다(5장). 난민과 탈북민은 1. 혼자 해결하기·상황을 긍정하기, 2. 기억하기·다시 구성하기, 3. 대항하여 말하기·행동하기, 4. 초월적 존재와 소통하기를 통해 포섭과 배제에 대응했다. 그 결과, 난민과 탈북민은 정치적 주체들, 체화된 주체들, 대안적 주체들로 다각화되었다(‘주체의 다각화’). 이글은 ‘주체의 다각화’가 변환적 메커니즘으로써 외집단에 대한 포섭 혹은 배제 메커니즘을 형성하는데 어떤 영향을 주고, 공동체의 내집단·외집단 경계형성 변화를 가져오는지 전망했다.
이 연구의 기여는 첫째, 시민권을 체계와 생활세계, 거시와 미시 다차원적인 과정으로 이해함으로써 시민권의 변화를 깊이 조망했다.
둘째, 시민권의 배제가 인권 침해로 이어짐을 분석했고, 인권을 사회구조적 조건 속에서 논하여 인권침해의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드러냈다.
셋째, 한국 시민권 변화의 함의를 살펴보았다.
이글은 한국의 공동체가 향후 타자에 대한 규범적이고 법적인 경계는 확장되어도, 정서적 경계는 닫혀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하며, 한국 사회가 포용적인 사회로 이행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