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07일 11시 27분
문화정책과 예술경영 분야에서 문화예술위원회(Arts Council)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문화예술위원회는 공공기금을 예술가 및 단체에게 지원하는 독립적 성격의 정부산하기관으로, 문화 거버넌스의 중추 역할을 하여 문화정책의 현황과 성과를 파악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인식되었다. 문화예술위원회의 전략, 정책, 사업의 성과를 평가하는 식의 연구가 지금까지의 주된 흐름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는 단편적으로 문화예술위원회와 관련된 사건이나 사업을 연구했을 뿐, 문화예술위원회에 대한 통시적이고 심층적인 분석을 시도하지는 못하였다. 특히, 문화예술위원회를 하나의 ‘조직’으로 바라본 조직사회학적 연구는 더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다. 조직의 구조, 목적, 인력운영, 재원사용 등 조직의 세부적인 작동방식을 연구하는 것은 문화예술위원회의 표면적으로 드러난 결과가 도출되는 근원적인 구조와 메커니즘을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즉, 조직사회학 관점을 통해 문화예술위원회가 어떤 경로로 진행되고 있으며 이 경로 상 변화가 왜 일어났는지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연구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설립된 2005년부터 2014년까지를 분석 대상으로 선정하고, 조직의 전략·비전·구조·기금사용·지원세부내역·회의록 등 광범위한 자료를 수집·분석하였다. 본 연구를 통해 밝히고자 한 주요 질문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설립 당시 이식(transplantation) 전략을 채택해 외국 예술위원회를 그대로 모방했는데 왜 조직이 초기 의도대로 진행되지 않고 접변(acculturation)이 일어났는가’ 하는 것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미국국립예술기금위원회(The 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 영국예술위원회(Arts Council of England)를 표본으로 삼고, 세부 조직의 명칭부터 사업 운영전략까지 상당히 많은 부분을 모방, 이식했다. 조직사회학 중 제도주의 이론에 따르면 새로운 조직이 만들어질 때 대부분 이미 존재하는 표본을 이식하는 동형화 전략을 취한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표본 조직의 인지문화·규범·규정적 제도환경을 충족시켜 새로 설립되는 조직 또한 환경에 적응하도록 노력한다. 사외이사제도, 환경경영시스템, 국제인증도입 등 이미 한국에서 외국에서 일반화된 표본을 이식, 모방하는 전략은 흔히 사용되었다. 그러나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표본 조직의 모습대로 운영되기보다, 한국이라는 새로운 지역적, 문화적 토양에 적응하는 방식으로 조직의 새로운 작동방식을 드러냈다. 위원회 소속 위원들끼리 개인 장르나 지역의 이해득실만을 앞세우고 위원회의 중장기적 발전을 위한 논의는 제대로 하지 않는, ‘장르 이기주의’ 문제가 발생했다.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기금, 장르, 사업 관련 의사결정을 하는 위원회의 역할이 대폭 축소되었으며, 특정 정치 성향의 예술인과 단체를 탄압하는 등 예술에 대한 정치적 개입도 강화되었다. 이 결과, 현재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복권기금으로 운영되는 복지형 사업에 집중하고 예술인보다 경영인을 위원으로 등용하고 있다. 매년 기금지원내역을 살펴보면, 일정하고 지속적인 원칙보다는 정책 변화에 맞추어 널뛰기식으로 기금지원 추세가 바뀌고 있다. 결국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신자유주의적 발전주의, 개발주의적 국가주의를 보여주는 사례의 하나로 볼 수 있다. 2000년대 전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가 일반화되면서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토대가 마련되었지만 여전히 국가개입주의의 영향은 한국에서 지배적이었다. 여러 사회합의주의 모델이 초기 의도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처럼 조직의 독립성과 자율성이 가장 핵심인 예술위원회 모델에서 이 자율성이 작동하지 않는 형태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진화해 온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조직적 ‘전환’은 제도적 환경에 대한 동형화만으로 조직의 실제 운영과 작동방식을 유추할 수 없는, 제도주의 이론의 한계를 보여준다. 그리고 단편적인 사업과 정책의 변화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난 10년을 보다 심층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지역 플랫폼에 가장 적합한 형태로 진화하여 위원회의 실질적인 자율성은 작동하지 않지만 명목적으로 정부, 예술가들과 균형을 이룬 지원기관으로 발전해나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