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07일 11시 26분
1990년대 중반 북한의 식량난 이후로 북한인권 문제가 주목하기 시작하여, 북한 인권 의제는 대북관계에서 중요한 쟁점 중 하나로 부각되고 있다. 이명박 정권 이후 남한 정부는 북한 인권 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하며 적극적으로 공론화하고 있고, 북미관계에서도 부시 전 대통령이 탈북자들과 면담을 하고 2004년 ‘북한인권법(North Korean Human Rights Act)’을 제정하는 등 북한 인권 문제는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발맞춰 북한 인권 유린에 대한 보고서, 국제 행사, 논쟁 등에 대한 기사를 거의 매일 접할 수 있을 정도로 언론의 주목 역시 급증했다.
이렇게 북한 인권 의제가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는 데 기여한 북한 인권과 관련된 활동을 하는 비정부기구(non-governmental organization, NGO)들의 역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미국의 북한인권법의 제정이나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 통과 등 단일국가 차원이나 국제정치 차원의 정책결정에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
반면 이들의 광범위한 활동과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북한 인권 NGO들에 대한 사회(과)학적 연구는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북한 인권 NGO들을 대상으로 하는 국내학자들의 몇몇 연구의 경우 이들의 이념, 조직, 전략을 평면적으로 기술하는 데 그치고 있다. 무엇보다 선행연구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기본적으로 이 NGO들의 활동이 북한 인권 개선에 도움을 준다는 기본적 전제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러한 입장에서 한발 떨어져서 이러한 규범적 전제가 가능하게 되는 인식론적 기초에 대해 질문해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인권의 개념은 정치시민권, 경제사회권, 평화권, 발전권까지 다면성을 가지기 때문에 인권의 언어를 통한 주장을 받아들일 때는 어느 일면만으로 치우치는, 그래서 결국 포괄적 인권의 증진을 저해하는 것은 아닌지 성찰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본고는 북한 인권 악화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한반도 평화와 북한 인권 문제를 포괄적으로 이해하는 ‘한반도 인권’의 관점에서 국내의 보수적 북한 인권 NGO의 형성 배경과 자원, 이념 및 활동을 종합적으로 조망해보려 한다.
먼저 국내의 북한 인권 NGO가 조직화될 수 있었던 정치적 기회구조의 변동을 살펴보았다. 반공국가로서 국가의 철저한 통제 하에 있던 시민사회의 기형적인 저발전과 그러한 장기적 통제 후에 1990년대 후반 진보정권의 등장을 핵심으로 하는 시민사회 지형의 변화가 있었다. 진보정권의 등장은 보수 세력에는 분단체제의 균열을 의미했고, 동시에 시민사회의 공간이 넓어지는 조건 속에서 이에 대한 대응운동으로서 보수 시민 사회가 형성됐고, 이후 보수 정권과 함께 국가적 차원에서 보수 시민사회에 대한 지원이 이루어졌다. 여기에 더해 냉전의 해체와 현실 사회주의권의 위기, 연이은 식량난 이후 더욱 분명해지는 북한 사회의 구조적인 위기와 탈북자의 증가는 1990년대 사회주의 혹은 급진적 운동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고 이들이 전향하면서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데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또한 냉전적 지정학 아래서 저차원화된 인권개념으로서의 국제적 인권 레짐이 확산된 것도 1990년대에 와서 북한 인권 문제가 시민사회의 영역에서 부각되는 배경을 이룬다.
다음으로는 단체를 이끄는 주도적 인적자원과 이들의 활동을 가능하게 만드는 물적자원의 공급을 살펴보았다. 먼저 시기별로 조금은 이질적인 인적자원이 형성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먼저 1990년대 중반 탈북자의 증가와 북한의 인권실태에 대한 증언의 증가를 배경으로 민주화 이전 남한에서 앰네스티 한국지부를 중심으로 ‘비정치적’ 인권 운동을 하던 세력들이 만든 북한인권시민연합이 생기고, 전향 이후 북한의 체제와 인권 실태에 대해 비판을 시작하던 NL 전향 그룹들은 1990년대 후반 북한민주화네트워크를 기점으로 조직화를 시작한다. 반면 이러한 그룹들은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던 탈북자들을 북한 인권 운동에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하고 특히나 북한민주화네트워크를 중심으로 활발히 활동하는데 이들은 진보정부가 북한 인권에 대해 자신들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인식한 200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인 자신들의 단체를 결성하면서 조직화되기 시작했다.
한편 비정부기구가 독립성을 유지하는 시민사회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후원에 의해 운영이 이루어져야한다. 반면 이들이 조직화되기 시작한 초기 이들이 실제적인 활동을 위한 물적·금전적 기반을 위한 시민사회의 지지는 전무했다고 볼 수 있다. 대신 이들은 그러한 기반을 대중적 지지를 통해 확보하지 못하고 국가기구의 지원에 의존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먼저 미국의 국무부의 인권과민주주의기금, 국무부의 의지가 반영된 NED, 여타 보수 인권단체들의 후원을 꼽을 수 있다. 본고에서는 자료가 접근가능한 NED의 역사와 정치경제적 함의, 그리고 국내 북한 인권 단체에 대한 지원의 의도 및 영향에 대해 집중적으로 살펴보았다. 또한 남한에서 보수 정부가 들어선 이후로는 비영리민간단체지원제도에 의해 사업비 명목으로 지원을 넓히고 2000년대 후반부터 유럽 인권 재단과 일반인 후원을 확대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조직의 형성에서는 제한적 영향을 주는 수준에 머문다.
마지막으로 이들의 이념과 활동을 다뤘다. 먼저 각 그룹들의 상이한 배경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공통되는 신념으로서 반공주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여기서는 ‘비정치적’ 인권운동을 주장하는 세력 역시도 현실인식에서는 반공주의를 인식론적 배경에 깔고 있다는 것을 지적할 필요가 있겠다. 이러한 반공주의에 기초한 이들의 북한 인권 문제 프레이밍 방식은 체제에 모든 원인을 두는 것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의 처방 역시 체제교체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이것은 폭압적 독재정권에 의해서 탄압받는 북한의 주민을 구출해야한다는 반평화적 방식을 감정적 호소를 통해 드러내 보이면서 운동으로의 동기유발을 꾀한다. 또한 이들의 이러한 이념과 프레이밍은 홍보와 캠페인, 초국적 연대 활동, 시민교육, 연구와 자료축적 등을 통해서 확산된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결론적으로 이들의 이러한 부상 조건과 반공주의에 근거한 이데올로기와 활동방식은 현재 우리가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북한 인권 문제의 원인과 해결방식에 관한 담론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먼저 1990년대 후반 진보정권의 분단체제 해체작업에 대한 대응운동으로서의 성격을 지니는 이들의 배경, 미국의 국무부와 한국의 보수정권·보수시민사회와의 연계를 통해 자신들의 위치를 구축한 이들의 존재조건, 그리고 이들을 묶어주는 근본적인 메타이념으로서의 반공주의와 그에 근거한 문제해결방식은 북한 인권 담론을 반공 이데올로기에 근거한 담론을 자명한 것으로 만들며 북한 인권 담론을 협소화시키는 사회적 영향을 갖게 되었다.
또한 이들의 이러한 사회적 영향력은 이들이 비판하는 북한 정권 너머 북한 인권 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위한 좀 더 큰 구조적 문제를 은폐하는 담론적 효과를 지닌다. ‘이목을 끄는 불의’로부터 ‘구조적 불의’로의 관점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이것은 결국에는 한반도의 평화체제에 역행하는 인식구조를 개개인들에게 심어준다는 문제로 귀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