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과소개교수진학부대학원게시판상백자료실
상백자료실

학위논문목록

학위논문목록

[2014] 진정성 여행의 사회학적 연구 - 인도여행의 상상과 실천-

2016년 10월 07일 11시 25분


본 논문은 진정성을 기획하는 사회적 행위(social action)로서 인도여행을 다룬다. 인도 배낭여행은 포스트-진정성 체제의 사회적 변동의 특수한 단면을 드러낸다. 후기근대의 여행주체들은 진정성이 아직 유효했던 시대와 그 효용이 탈각된 시대의 구조적 요구 사이의 어느 지점에 위치한다. 이들은 여행이라는 사회적 행위에 스스로를 정향함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삶의 전략과 의미화를 시도하고, 균열의 틈새에서 삶을 영위하려 한다. 본 연구는 이들이 시도하는 삶의 전략과 의미화를 규명하고자 인도여행을 새로운 삶을 위한 전형적인 대안으로 간주하고 탐색하려 한다.
II장은 배낭여행지로서 인도가 지목되고 대중화된 현상의 본질은 관광통계가 아닌 풍부한 재현의 영역에 있음을 보인다. 인도여행의 ‘유행’은 출국자의 수만 가지고는 그 범위와 결을 제대로 가늠할 수 없다. 출판시장과 사이버스페이스 등은 인도의 여행경험을 언어적·이미지적으로 재현하고 대중화함으로써 인도재현을 지속적으로 재생산하고 소비하는 데 기여했다. 인도(여행)에 대한 풍성한 재현은 ‘인도적인 것’에 대한 상상을 창출한다. 90년대 후반은 한국에서 인도여행의 실천이 대중화된 시기임과 동시에 담론 공간 내에서 ‘인도적인 것’의 상상이 형성된 시기이기도 하다. 또한 인도여행의 ‘상상’은 예비 여행자들이 여행을 동기화하고 기대하며, 계획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다시 말해 여행자들은 여행실천에 앞서 인도재현의 담론공간을 거쳐 특정한 여행상상을 획득하게 된다. 장의 나머지 부분은 인도와 인도여행의 담론적 재현의 계보를 구성하는 데에 할애하였다.
인도여행의 상상공간은 여행실천이라는 물리적이고 가시적인 행위의 근저에서 작동한다. 여행담론과 여행지식은 여행상상이란 가교를 통해서만 여행실천으로 이행될 수 있다. 인도여행의 장은 인도에 관한 시각적·영상적 기호로서의 이미지는 물론, 인도와 관련된 감각, 재현, 지식, 담론 등을 포괄하는 개념인 ‘상상’이 지속적으로 활용되는 공간이다. 인도상상의 공간은 인도를 재현하는 매체(여행기, 가이드북, 뉴스 등)에 의해 조직되고 수신자에 의해 해석, 재생산된다. III장에서 그려내는 인도여행의 상상적 지형은 ‘진정한 인도’에 대한 경합적 재현과 인도를 여행함으로써 획득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진정한 자아’에 대한 상상적 기대로 채워져 있다. 매체의 인도재현과 면담자의 인도이미지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상상공간을 크게 세 층위로 나누고, 각 층위의 지배적인 상상에 대립적인 메타포를 부여하였다. ‘성자와 청소부’는 ‘인도인’에 대한 이항적 여행상상에 대해, ‘풍경과 위험’은 여행지 인도가 지닌 ‘공간성’의 상상에 대해, ‘카오스와 질서’는 ‘사회’로서의 인도를 상상하는 방식에 대한 은유적 명명이다. 또한 여행목적지에 대한 상상은 여행자의 자아상상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인도여행의 재현에서는 ‘자기-실현’의 상상이라 부를 만한 독특한 형식의 자아상상이 반복적으로 발견된다.
IV장은 인도여행의 상상이 직접적인 여행실천을 경유하여 승인, 거부, 성찰되는 과정을 다룬 ‘상상-실천’, 제도화·규범화·의례화된 여행실천의 양상을 분석한 ‘규범-실천’, 그리고 여행경험을 서사적으로 의미화함으로써 진정성의 획득을 도모하는 여행자들의 ‘자기-실천’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상의 허구성이 실제 경험의 현실성과 성공적으로 접속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인도여행의 실천경험은 상상을 빗겨가거나 통째로 전복하기 십상이다. 인도여행의 상상공간에는 부재했던 의외적 요소들, 예컨대 인도의 첫인상이 주는 감각적 충격들은 ‘상상의 배신’을 발생시킨다. ‘상상의 배신’은 여행자를 실망하게 하고, 다른 여행자들과 ‘배신’의 경험과 감정, 서사를 공유함으로써 여행경험을 집단적으로 성찰하게 한다. 이는 상상의 훼손이 자신에게만 일어난 일이 아님을 확인하고, 자신의 경험과 부합하는 적당한 여행의 기대치를 조율하며, 깨어진 여행상상을 대신해 여행의 의미를 새롭게 벌충하는 과정이자, ‘상상의 배신’에 대처하는 한편 다른 여행자들과 자신의 ‘거리’를 확인함으로써 자신만의 여행의 의미를 고유화하고 강화하는 기회가 된다.
여행의 어려움은 현실과의 조우에서 비롯되는 충격을 최소화함으로써 여행을 보다 예측가능하고 안전하게 만들고, 여행경험을 문화적으로 쉽게 수용할 수 있게 하는 장치를 요구한다. 여기에 가장 효율적으로 응답하는 것이 여행의 제도화이다. 여행이 제도화될수록 상상의 배신이 벌려놓은 상상-실천의 간극 역시 줄어들 수 있다. 즉 제도화의 결과로 굳어진 여행의 방식과 이동의 경로, 볼거리와 그렇지 않은 것의 구분, 여행의 규범과 규칙 등이 위험에 대한 완충장치로 기능한다. 여행경험의 의외성은 제도화를 통해 적절히 통제될 수 있다. 여행의 상품화·제도화는 여행자의 여행경험을 균질적인 의례로 고형화한다. 여행자들은 선험적으로 부여된 여행경로와 ‘볼거리’를 따라 ‘관광객 게토’라는 한정된 공간에 구속된 채 공통된 경험을 반복 재생산한다. 그러나 그들이 외부의 제도적 조건이 요구하고 부과하는 방식 그대로 여행경험을 해석하는 것은 아니다. 여행자는 자신의 경험을 성찰적으로 해석함으로써 명백한 비진정성의 경험을 구별하고 불편함과 불쾌함을 느끼며, 여행지의 메타세계와 같은 상품화·의례화된 측면을 간파한다. 그러나 “작은 여행자들의 세계”가 전부가 아님을 알아차린다고 해서, 이미 주어진 관광체계를 전복하거나 적극적으로 대안을 모색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자신의 여행경험의 대부분이 지극히 평범하고 무난하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며, 대개 주어진 조건을 무던히 수용하고 다음 여행지로 이동할 뿐이다.
여행실천의 제도화와 의례화에도 불구하고, 여러 면담자들의 여행경험 서술은 인도여행의 진정성 경험이 존재함을 역설하고 있다. 이들의 여행서사의 핵심에는 ‘오롯한 나만의 경험’, 즉 유독 독특하고 유별나며 ‘진정한 것’으로 의미화된 ‘사건들’이 존재한다. ‘진정성 사건’이라 부를 수 있을 이러한 경험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오는 감각적 충격과 감정적 동요에 의해 촉발된다. 여행자들은 ‘오롯한 나만의 경험’을 통해 여행의 ‘자기-실천’에 단일성과 유일성을 부과한다. ‘진정성 사건’은 여행실천과 여행경험의 의례적 평범성과 무난함이 충분히 인지되고 수용된 상황에서 발생한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심장한 경험이다. 이 경험은 외부의 제약과는 무관한 여행자의 내적 체험이다. ‘진정성 사건’은 진실성의 준거가 여행자의 내면에서 구성되어 있기에 외적 타당성을 갖기가 어렵다. 즉 여행자가 느낀 당시의 현장감과 감정적 동요는 전시될 수는 있어도 전달될 수는 없다. 바로 이 점이 여행자로 하여금 자신의 ‘진정성 사건’을 독특하고 유일한 경험으로 의미화하게 한다.
여행은 의미화는 이중적 구조를 지닌다. 첫 번째 의미화는 ‘진정성 사건’을 매개로 서사화된 여행경험이 ‘진정한 것’으로 거듭나게끔 과정이다. 다시 말해 ‘진정한 경험’에서 ‘진정한 여행’으로의 이행이 발생한다. 두 번째 의미화는 ‘진정한 여행’의 서사를 체득한 여행자가 자신의 ‘삶’의 의미를 재구성하는 단계다. ‘여행’은 ‘삶’과 완전히 독립된 생활양식이나 경험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다시 돌아보게 만들고, 삶 안으로 침투하는 사건이다. 여행과 삶은 이러한 이중적 의미화 과정을 통해 연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