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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주민운동의 활성화 요인에 관한 연구 - 도시 아파트 단지 사례를 중심으로-

2016년 10월 07일 11시 23분


현대사회에서 공동체란 과거의 그것과는 매우 다른 함의를 가진다. 과거 전통사회는 특정 공간을 중심으로 일차적 인간관계에 기반해 상호부조의 나눔이 통용되는 순수한 ‘공동사회’였다. 당시에는 피아(彼我)의 구분이 지금처럼 날카롭지 않았고, 공동체의식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타인보다는 나를 우선하는 삶을 살면서 특정한 필요와 이익에 따라 관계를 맺는 ‘이익사회’에서 살아간다. 특히 오늘날 한국사회의 대표적 주거공간이 된 아파트는 타인으로부터 나와 내 가족을 단절시킴으로써 자유와 사생활을 보장한다. 아파트 주민들은 필요시에만 공동체를 형성해 이익을 추구하고자 한다. 또한 급속한 산업화를 거치며 투자 상품으로 변해버린 아파트의 의미는 개인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능력을 드러내는 척도가 됐는데, 이는 아파트라는 공간에서의 공동체적 삶의 부재와 아파트 구매에서 소외된 임대아파트 주민들의 사회적 배제를 야기한다. 이처럼 현대사회의 대표적 공간인 아파트에서 공동체의 의미를 찾기는 매우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현대인들은 고향 지인의 경조사를 찾거나, 동창회에 참석하는 등 ‘연고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이는 어느 시대, 어느 사회를 살아가든 ‘사회적 동물’로서의 모습을 추구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 때문이다. 도시공동체운동은 이같은 인간의 본성을 실현하는 기회가 된다. 도시공동체운동 유형 중 하나인 아파트공동체운동은 삭막한 공간으로만 인식되던 아파트에서 이웃 관계의 확장을 통해 공동체성을 증가시키고 그 힘을 바탕으로 아파트를 둘러싼 국가 정책, 시장 경제 등 체계에 의해 많은 제약을 갖게 된 생활세계를 새로운 모습으로 재구성하려 한다. 특히, 최근에는 아파트공동체운동에 대한 행정의 관심이 두드러지는데 이들은 제도적·물질적 지원을 통해 아파트공동체 활성화를 이루려 한다. 그러나 행정적 지원은 아파트공동체 활성화의 본질적 요인이 될 수 없다. 같은 행정의 지원 속에서도 아파트공동체의 성공과 실패를 모두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본 연구는 과연 무엇이 아파트공동체 활성화의 가장 본질적이고 실제적인 요인인가 라는 문제제기에서 시작되었다.
연구자는 아파트공동체운동을 ‘체계에 의한 생활세계의 식민화’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 그렇기 때문에 아파트공동체 활성화 요인은 아파트의 생활세계 속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체계의 강력한 힘은 생활세계의 주민 구성, 이웃과의 관계 방식, 아파트공동체에 대한 열망, 조직 작동 방식 등 전반적인 영향을 미친다. 각 아파트는 그들의 생활세계 특성에 맞게 체계에 대응한다. 그러나 활성화에 성공한 아파트공동체들은 각각의 상이한 환경과 여건, 자원 동원 방식 등에도 불구하고 ‘아파트공동체 활성화’라는 같은 결과를 이끌어내는 공통의 요인들을 갖고 있다. 연구자는 아파트공동체가 활성화된 아파트들의 생활세계에서 주민의 참여, 공유공간의 확보, 공동체 프로그램의 진행, 사회적 자본이라는 네 가지 요인들을 찾아냈으며 이를 ‘아파트공동체 활성화의 주요 요인’으로 정의했다.
이어 분양아파트인 송림아파트와, 영구임대아파트인 보람아파트에 대한 실증분석을 통해 각 아파트공동체의 형성과 성장 과정을 연구했다. 각기 다른 체계에 의해 구성된 두 아파트의 생활세계는 그 특성이 매우 다르다. 비교적 높은 사회적 지위를 누리며 살아가는 송림아파트 주민들은 아파트 구매를 통해 획득한 자신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한다. 또한 주민들 사이에 공유되는 가치가 아파트공동체운동의 목적이 되어 그 가치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아파트공동체가 작동한다. 한편, 사회적 약자들로 구성된 보람아파트 주민들은 생활세계의 많은 제약 속에서 아파트공동체운동을 이루어나갈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사회적 승인을 받으려는 그들의 열망이 아파트공동체를 성장시키는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본 연구는 아파트공동체의 활성화를 위한 리더십의 역할을 주목했다. 리더십은 리더 개인의 열정과 헌신 뿐 아니라 그 리더를 인정하고 함께 활동할 주민의 특성에 따라 달라진다. 즉, 리더십 형성에 생활세계가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다른 환경과 여건 속에서 발현된 송림아파트공동체와 보람아파트공동체의 리더십은 각 아파트마다 다른 유형으로 나타나지만, 결과적으로 아파트공동체 활성화의 주요 요인들을 이끌어 냄으로써 아파트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방향키의 역할을 감당한다.
본 연구는 공동체가 부재한 도시사회의 새로운 변화를 기대하며 아파트공동체운동의 활성화 방안에 대해 살펴봤다. 현재 수준에서의 아파트공동체운동은 비대해진 현대사회의 체계에 대응해 생활세계의 강력한 변화를 이끌어내기에는 아직 한계가 있다. 분양아파트에서의 아파트공동체운동은 단지 중산층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한 제한적 시도로 비춰질 수 있으며, 영구임대아파트에서의 아파트공동체운동은 강력한 체계를 변화시킬 힘을 가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한다. 그러나 연구자는 오늘날의 아파트공동체운동을 좀 더 적극적으로 평가할 것을 제안한다. 교양시민, 공론장 등 성숙한 시민사회의 모습이 부족한 한국사회에서 아파트공동체운동은 사적인 친밀성을 바탕으로 소규모의 공론장을 구성해나가고 있으며, 이를 통한 교양시민의 출현 가능성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현재의 상황이 작은 첫걸음으로 보일지라도 실제 아파트공동체의 성장은 주민들의 삶의 양식과 의식을 변화시키고 있다. 더 나아가 아파트공동체 간의 관계망이 이루어진다면 이는 사회 전반의 실제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개별 단위 아파트공동체보다 더 큰 단위의 공론장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
이를 위해 결국 아파트공동체운동의 주체는 그 누구도 아닌 주민이어야 한다. 송림아파트공동체와 보람아파트공동체는 주민의 의견이 반영되고, 주민의 참여와 이해를 통해 아파트공동체가 활성화되었다. 그러나 운동의 전 과정에서 주민들이 적극적 주체의 역할을 담당하지는 못했다. 리더와 몇몇 적극적 공동체 참여 인원들을 중심으로 먼저 아파트공동체운동이 시작되고, 그 다음 단계에서 다른 주민들의 참여로 확산된 것이다. 결국 모든 주민들의 적극적, 자발적 참여는 과제로 남아있다. 전체 주민의 기대와 참여 속에서 이루어지는 아파트공동체운동에 대한 논의는 연구자의 추후 연구과제로 남겨두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