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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북한에서의 경제적 규범의 변화와 법의 실효성에 관한 연구-

2016년 10월 07일 11시 13분


초록

본 논문은 첫째 탈사회주의 국가들의 경제 변동과 법제화, 둘째 북한의 경제적 규범의 특성과 변화, 셋째 북한에서의 시장의 형성과 법의 실효성 검토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1990년부터 2010년까지의 변화를 주로 고찰하였다. 그 이유는 20년 동안 북한이 심각한 경제난 겪으면서 경제적 규범에 잦은 변화가 일어났고, 북한 주민의 일상 경제영역에도 변화가 크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본 논문의 문제제기는 규범영역의 변화와 경제영역과의 관련성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탈사회주의 국가들의 경제 변동과의 비교를 통해서, 북한에서의 경제 변동을 살펴보되, 경제적 규범의 제도화, 시장의 형성, 법의 실제적 효력을 비교사회학과 법사회학적 접근을 통해 기술하였다.
러시아와 동유럽 국가들은 시장경제체제로‘급진적’전환을 하면서,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통한‘법치주의’를 구현하려고 했다. 그 결과 체제 전환 과정에서 비법적 규범은 법적 규범보다 점점 열위에 있게 되었고, 법의 제개정을 통한 경제 정책은 사회구성원에게‘가시적’영향력을 주었다. 하지만 비법적 규범이 법적 규범으로 완전히 법제화 되지 않은,‘불안정 법제화’상태에 놓여 있게 되었다. 한편 중국과 베트남은 시장경제체제로‘점진적’전환을 시도했다. 그러나 중국은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운영하지 않고‘중국식 법치주의’를 구현하려는 실험을 했다. 베트남은 중국을 모델로 삼고 있지만, 법제화와 시장화의 속도가 중국에 비해 늦다. 두 나라 역시, 법의 제⦁개정을 통한 경제 정책은 사회구성원에게 가시적 영향력을 주었다. 하지만 비법적 규범이 법적 규범으로 완전히 법제화 되지 않은,‘불안정 법제화’상태에 놓여 있게 되었다.
본 논문에서는 경제적 규범을 비법적 규범과 법적 규범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전자는 법이 아닌 통치권자의 지시나 당의 정책을 가리킨다. 통치권자의 지시나 당의 정책의 규범력이 강하다고 하더라도‘법’이라고 규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북한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통치권자의 지시나 당의 정책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비법적 규범은 법적 규범보다 실효성, 강제성, 이데올로기성을 강하게 내재하고 있고, 이념의‘실현수단’이자 정권의‘통치수단’으로서 기능하고 있다. 비법적 규범은 체계성과 일관성이 낮고, 가변성과 빈변성(頻變性)이 높다. 반면에 후자는 성문법을 가리킨다. 법적 규범은 비법적 규범보다 열위(劣位)에 있으면서 북한식 사회주의의‘선전수단’으로서 기능하고 있다. 그리고 북한 지배층은 법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고, 실제 법은 적용에 있어 실효성과 강제성이 약하다.
하지만 북한 정권 수립 초기부터 2010년까지 비법적 규범과 법적 규범의 상호관계에는 유의미한 변화가 일어났다. 1990년대 이전에는 비법적 규범이 법적 규범보다 우위를 점하는,‘일원적이고 안정적’관계였다. 따라서 통치권자 지시나 당의 정책을 법제화하는 작업이 미비했다. 그러나 1990년 이후 식량난과 자연재해가 발생함에 따라, 기존 방식으로 사회를 유지하기가 어려워졌다. 더구나 김일성 사후, 김정일은 김일성과 다른 통치 방식을 강구했고, 규범 정비 작업과 더불어 대외 경제 개방 정책을 폈다. 비법적 규범이 법적 규범과‘불안정 우위’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즉, 비법적 규범과 법적 규범의 상호관계가‘과도기적 상태’에 있게 된다. 2000년대에는 이전 시기와는 달리 경제 관련 법제화 작업이 크게 늘어났다. 이제 비법적 규범과 법적 규범은‘이원적이고 불안정적’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즉, 불완전하지만 법적 규범이 비법적 규범과‘비교적 대등하게’북한 사회에서 기능하게 된 것이다. 결국 다른 탈사회주의 국가들처럼‘불안정 법제화’상태에 놓여 있게 되었지만, 불안정 정도는 더 심하다.
한편 북한 정권은 특정 지역에 경제특별지구를 설정하여 시장경제요소를 도입하는 실험을 해왔다. 하지만 법제화 미비, 신뢰성 부족, 소극적 경제 개방 정책으로 대부분 실패했고, 현재는 개성공업지구와 나진선봉경제특구만이 운영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농업 생산량이 감소함에 따라서, 북한 주민은 자신의 집 앞마당을 텃밭으로 경작하여 생산한 농작물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기도 했다. 시장의 형성이 본격화되고, 헌법을 위시한 법률에 시장경제요소가 부분적으로 명시되기도 하는 변화가 일어났다. 즉, 북한 사회에서도 시장이 형성되어 발달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 정권은 법의 사회화를 위해서 언론매체, 학교 교육, 법무해설원을 활용하고 있다. 언론매체는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고, 효율적으로 북한 주민을 사회화할 수 있는 수단이다. 학교 교육에서도 사상 교육을 비롯한 규범 교육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끝으로 법무해설원은 북한 사회에 존재하는 특별 행정사법기관으로서 북한 주민의 일상생활에 깊숙이 관여하여, 규범 해설 및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결국 법의 사회화는 북한 주민에게‘형식적’차원에서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부터 농장, 공장, 기업소 등의 생산량이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배급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은 1990년대를 거치면서 더욱 악화되어 배급제가 사실상 마비되는 상태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로 인해 북한 주민 대부분은 생존을 위해 장마당 등에서 시장 거래를 하게 되었고, 거기서 발생한 소득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또 경제난이 심화됨에 따라 경제 관련 일탈행위가 증가하게 되는데, 특히 민사 분쟁과 경제범죄인 절도나 횡령이 빈번하게 발생하게 된다. 심지어 뇌물을 제공하지 않고는 경제활동 자체를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서, 뇌물거래는 북한 사회에서 매우 일상적인 일탈행위라고 하겠다.
이런 상황은 경제 관련 법이 경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또한 상하위계층을 막론하고 북한 주민 대부분이 경제의식이 시장화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북한 사회에서는 정권에 대한 불신이 크고, 생존을 위한 극단적 개인주의가 성행하며, 중국과 남한에 대한 동경심이 많다. 결국 북한 주민은 경제적 규범의‘이중적 내면화’를 경험하게 된다. 북한 주민은 경제적 규범의 변화에 따라 소극적 반응뿐만 아니라‘적극적 반응’을 통해, 그들만의 경제적 생존권을 확보해 나가고 있다. 따라서 경제적 규범은 북한 정권이 의도한 것과는 다른 실효성을 나타내고 있다. 경제적 규범은 북한 주민의 경제활동에 일방적으로‘가시적’영향력을 부여하는 위치에서, 쌍방적으로‘묵시적’영향력을 수수(授受)하는 관계로 변하고 있다. 다른 탈사회주의 국가들과 달리‘묵시적 ’상호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북한 사회의‘특수성’에 기인한 것이다.
본 논문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1990년부터 북한 사회에서 경제적 규범의 변화가 상당 부분 발생했고, 그 결과 비법적 규범과 법적 규범의 상호관계에도 변화가 발생했다. 즉, 성문법으로의 법제화가 북한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시장이 형성되어 발달하는 현상도 나타남에 따라, 북한 정권은 법적 제도화와 비법적 제도화를 통해 북한 주민의 경제활동을 통제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 주민은 경제적 규범을 이중적으로 내면화함으로써, 북한 정권이 의도한 법의 취지를 부분적으로 약화시키면서 자신들만의 경제활동을 영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