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온정적’ 양형과 ‘과도한’ 보안처분으로 비판받는 한국 처벌제도의 특수성은 형사사법 파행의 역사적 경험, 그리고 사법불신을 극복하기 위한 행위자들의 상이한 대응 전략이 가져온 결과임을 밝혔다. 지금까지 한국사회에서 엄벌주의에 대한 논의들은 그 보편성을 강조하거나 이를 추동하는 담론이나 입법들이 실제 형사사법체계를 관통하면서 어떠한 방식으로 작동하는지에 대하여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때문에 민주화 이후의 엄벌주의가 왜 하필 성폭력을 중심으로 대두된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왜 특정한 형태로 제도화 될 수 밖에 없었으며 그 효과가 무엇인지는 공백으로 남아 있었다. 이 논문은 역사적으로 형성된 제도가 이후 행위자들의 전략과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는 역사적 제도주의의 관점, 그리고 법의 상대적 자율성과 그로 인한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강조하는 법사회학, 특히 법여성학적 관점에 기반하여 한국 사회의 처벌 제도의 변화 과정 속에 성폭력을 위치 지었다. 이 논문의 주요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성폭력에 대한 ‘온정적’ 형량과 ‘과도한’ 보안처분이 중첩된 한국사회의 특수한 처벌 제도는 사법민주화의 산물이다. 정권교체와 함께 본격화 된 사법민주화의 전략들은 권위주의 시기의 탈법적이고 인권침해적인 처벌 제도 운용의 역사적 경험으로 인해 그 유제를 청산하는 것, 보다 구체적으로는 피고인 등의 자유권을 보장하고 국가권력의 남용을 견제하기 위해 사법부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것으로 집중되었다. 이러한 기조 속에서 자유박탈적 보안처분이나 사형집행, 구속 관행은 제어되었고 이는 경제위기 이후 구금과밀의 상황에서 행형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국가의 전략과 쉽게 결합하며 단시일 내에 공고화 되었다. 또한 ‘사법부 독립’을 둘러싼 정치는 사법부의 판결 재량을 해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양형기준과 참여재판제도가 도입될 수 있도록 한 바, 이는 처벌 강화의 사회적 요구로부터 보다 덜 민감할 수 있는 제도적 조건을 마련하면서 엄벌주의 입법의 효과를 제어하게 된다. 하지만 이와 같은 사법민주화의 기조로 인해 피해자의 인권 소외 및 피고인 등과의 권력불균형에 대한 비판, 처벌의 공백에 대한 우려 속에서 처벌강화를 요구하는 반동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벌의 정당성 기반으로서 피해가 부상하게 되고, 잠재적/피해자 보호를 명분으로 한 응보 및 안전 확보에의 요구와 판결에 대한 불신은 처벌에 ‘법 감정’을 기입하기 위한 움직임들을 강화시켰다. 그리고 이를 관철시키기 위한 시도들은 기왕의 처벌 제도를 우회하여 새로운 안전장치들을 도입하는데 집중된다. 그 결과 기존의 양형 관행이 지속되는 가운데 과도한 보안처분이 중첩된 한국의 특수한 처벌 제도가 형성된다. 둘째, 형사사법 행위자들의 상이한 대응 전략은 이와 같이 이질적인 사법민주화의 가치들의 경합과 그 실행을 강화시키는데 기여하게 된다. 사법부는 선제적이고 방어적인 개혁안을 내놓으면서 외부의 통제를 최소화하는데 성공한다. 특히 ‘사법부의 독립’은 처벌에 대한 자율성 확보를 통해 기존의 관행을 유지하는데 핵심적인 기제가 되었다. 이들은 위헌제청을 통해 국회의 포퓰리즘적 입법의 효과를 제어하는데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다. 이에 반해 검찰은 과거사 청산 및 사정작업 등 사법민주화의 과정에서 미온적이고 정치적인 대응, 처벌의 정치성으로 인해 시민사회의 개혁 요구에 직면하게 된다. 이들의 권력 남용을 견제하기 위한 움직임이 강화되고, 사법부는 물론 경찰 역시 대항세력으로 부상하자 검찰은 엄벌주의적 형사정책을 통해 대국민 신뢰 확보에 나서기 시작한다. 그간 사법민주화의 과정에서 주도권을 확보하지 못했던 국회 역시 ‘법 감정’ 반영을 자원으로 엄벌주의 입법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셋째, 성적 이중규범과 아동 보호를 강조하는 가부장적 섹슈얼리티 규범은 엄벌주의 입법은 물론 그 효과를 제어하는 핵심적인 요인이 되었다. 경제위기로 인해 강화된 청소년의 섹슈얼리티 보호 담론은 ‘원조교제’에서 점차 순결함과 무기력함을 피해자의 전형으로 하는 아동 성폭력으로 이동, 강화되기 시작한다. 이들의 섹슈얼리티 보호는 그들을 무성적 존재로 규율하려는 가부장적 섹슈얼리티 규범을 통해 다수의 지지를 끌어낼 수 있었다. 또한 바로 그러한 이유로 성폭력에 대한 엄벌주의 입법은 국가 형벌권의 확장을 제어하고 피고인 등의 인권 보호를 우선시 하는 사법민주화의 기조 속에서도 큰 사회적 갈등을 수반하지 않고 성공할 수 있었고 안전장치의 확장에 대한 사회적 반발 역시 최소화되었다. 이와 같은 입법 과정은 물론 법 해석과 처벌 부과의 과정에서도 성폭력 피해에 대한 왜곡된 통념과 피해자의 전형은 보호가치 있는 피해자와 엄벌의 대상을 선별하는 핵심적 기제가 되었다. 그리고 이에 따라 엄벌주의 입법의 효과는 이원화 된 방식으로 나타났다. 이는 ‘법 감정’ 반영은 물론 범죄자의 인권 보호를 강조했던 사법민주화의 움직임들 속에서도 정작 처벌의 실질적 정당성, 법 해석의 젠더 편향이 극복되지 못하였음을 의미한다. 성폭력 피해에 대한 이해나 피해자의 실질적 권리 확장과는 무관하게 엄벌주의가 강화 혹은 제어되었다는 점은 성폭력 피해가 각각의 처벌을 정당화 하는데 도구화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한국 사회에서는 반인권적 처벌 제도 운용의 역사적 경험과 사법불신, 그리고 가부장적 섹슈얼리티 규범이 결합하면서 엄벌주의의 효과가 선별적으로 강화되었다. 이는 엄벌주의에 변이를 일이키는 사회적 요인을 규명하기 위한 이론들이 처벌을 통해 구축하려는 해당 사회의 지배질서가 무엇인지, 형사사법체계의 특징은 이를 강화 혹은 제약하는데 어떠한 조건이 되었는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