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10일 04시 02분
본 논문은 1990년대 초반의 탈냉전기부터 2000년대 중반의 참여정부기에 이르기까지의 동아시아 담론에 관한 지식사회학적 연구다. 담론분석의 대상으로서 여느 담론과 비교하건대 동아시아 담론은 뚜렷한 구획을 갖는다기보다 여타의 논의들이 뒤섞이는 지적 구성체라는 특징을 지닌다. 이 점은 동아시아 담론이 여느 담론과 달리 구체적 지향성이 모호한 데서 기인한다. 즉 동아시아 담론은 ‘동아시아’라는 핵심어에서 담론의 목적도 주체도 드러나지 않는다. 실제로 동아시아 담론은 고정된 의미와 일률적 용법을 갖는다기보다 어떤 객관적 조건과 주체적 모색이 결부되느냐에 따라 함의가 크게 달라졌으며, 동아시아 담론에는 동양문화론부터 대안체제론, 지역주의론까지가 뒤섞여 있다. 또한 동아시아 담론에서 동아시아라는 개념은 지리 범주를 가리키는 단순한 지역명에 머물지 않고 지역지평, 지역질서, 경제권역, 문명권, 사유공간, 연대의 장 등 다양한 용법으로서 거론되었다. 이러한 동아시아라는 개념의 탄력성은 한편으로 동아시아 담론에서 풍부한 쟁점을 낳는 토양으로 기능했으나, 다른 한편에서는 동아시아 담론의 정체성이 모호해지거나 동아시아 담론이 여러 갈래로 분기하는 이유로 작용했다.
동아시아 담론을 한국지식계에서 학술적 전통으로 자리매김하고 동아시아 담론의 현실적 용법을 신장시키려면 그 혼란상을 정리하기 위해 동아시아 담론 자체의 인식론적 토대와 배치를 되묻는 작업이 필요하다. 본 논문은 혼종하는 동아시아 담론들의 내적 논리를 규명하고 그 사이의 쟁점을 도출하며 동아시아 담론의 전반적 이행 과정을 추적한다. 즉 동아시아 담론 일반을 뭉뚱그려 성쇠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양상의 논의들이 제기하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그것들 사이의 차이를 섬세하게 가려내 동아시아 담론을 단수가 아닌 복수의 담론들로 계열화하고, 분화를 초래한 사회적 요인을 포괄적으로 조사하고, 담론들 간의 길항관계ㆍ경합관계를 밝혀내고, 동아시아 담론의 이행 중에 도태된 것과 지속되는 것을 변별해내고, 그로써 동아시아 담론의 현실적 기능성과 앞으로의 가능성을 재구성해내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 2부 ‘동아시아 담론의 형성과 이행’에서는 19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 담론의 추이를 분석했다. 학술지에서 기획된 특집과 동아시아 관련 논문들을 조사해 동아시아라는 개념이 어떠한 위상에서 어떠한 지향으로 활용되는지를 살펴보고, 국면에 따른 이행과 분화의 과정을 확인한 것이다. 개괄하자면 동아시아 담론이라 부를 만한 논의가 등장한 데는 1990년대 초기 창비 진영의 역할이 컸다. 직후 인문학자들, 특히 한중일 삼국의 문학ㆍ역사학ㆍ철학을 전공하는 논자들이 동아시아의 정체성에 관한 논의에 불을 지폈다. 그리고 1990년대 중반에는 사회학ㆍ경제학ㆍ정치학 분야의 사회과학자들이 가세해 동아시아 경제발전의 특수성을 설명하려는 시도가 이어졌으며, 1990년대 후반의 경제위기 이후로는 동아시아 지역협력체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외교학자, 경제학자들을 중심으로 고조되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국민의 정부 시기에 국제정치학, 국제관계학 연구자들이 동아시아공동체론을 본격화했으며, 2000년대 중반 참여정부기에 이르러서는 한국의 전략적 단위로서 동북아라는 지역명이 부상하며 동아시아 담론은 정책적 담론으로서 입지를 굳혔다. 그리고 이렇듯 지향성을 달리하는 담론들이 시기를 달리해 등장하고 부상하면서 기존의 담론과 길항관계에 놓이고 담론의 정치가 펼쳐졌다.
3부 ‘동아시아 담론의 계열화와 지식계 내외의 조건들’에서는 동아시아 담론들의 배치 양상과 경합 논리를 보다 명료하게 규명했다. 이를 위해 먼저 담론의 지향성이라는 기준에 근거해 동아시아 담론을 네 가지 하위담론으로 분류했다. 그것은 대안체제론, 문화정체성론, 발전모델론, 지역주의론이다. 그리고 이처럼 상이한 계열의 동아시아 담론들이 지식계 내외 요소들의 변화에 대해 각기 어떻게 달리 반응하며 혹은 어떠한 사회적